김창덕 산업부 기자
기지에 도착한 지 몇 시간이 지나서야 사고에 관한 질문을 어렵사리 꺼낼 수 있었다. 대원들이 겪었던 사흘간의 사투에 대해 그는 힘겹게 설명을 이어갔다. 대원 15명 중 8명이 차디찬 남극 바다에 빠졌다. 1명은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고개를 든 채 애써 삼키던 남자의 눈물이 아직도 생생하다. 후배를 떠나보낸 선배의 자책감과 위기에 빠진 기지를 정상화해야 했던 리더로서의 고민이 얼마나 컸을까.
윤 부소장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지난해 12월 17일 삼성그룹 수요사장단 회의에 강연자로 초청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극한의 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위기 시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지 강연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고 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병상에 누워 있는 데다 승승장구하던 삼성전자 실적마저 꺾이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감에 휩싸인 삼성으로선 맞춤형 강연이었다.
광고 로드중
“위기의 본질은 한 번 조직 속에 들어오면 절대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나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위기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 반드시 내게 다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위기가 감지되는 순간 리더는 ‘지금이 최악’이라는 생각으로 전략을 짜야 합니다.”
얼음바다에서 조난을 당한 대원들에게 “곧 구조대가 갈 것이다”란 말로 희망을 심어주기보다는 “최악의 경우 3일간은 스스로 버텨야 한다. 하지만 넌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너가의 잘못을 감추려다 오히려 일을 키운 한 기업의 사례도 곁들였다. 위기를 직시하지 못하고 가볍게 생각한 대가는 그만큼 혹독하다는 설명과 함께.
윤 부소장은 이렇게도 말했다. “위기에 필요한 리더십은 대단한 게 아닙니다. 원칙과 기본입니다. 남극에서 이를 버리면 대원들의 목숨이 위험하죠.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 로드중
1월이 거의 다 지나갔는데도 올해 경영계획을 확정짓지 못한 곳이 많다.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 비록 경영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이 최악”이라는 윤 부소장의 ‘극한 리더십’을 한 번쯤 곱씹어 보면 어떨까.
김창덕 산업부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