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을미년, 양의 의미와 상징
십이지신도의 양을 상징하는 형상. 우리나라 십이지신은 불교의 영향으로 불교를 수호하는 신장으로 표현돼 있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도 담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양은 어미의 젖을 먹을 때 앞다리를 꼭 꿇는다. 무릎을 꿇고 젖을 빠는 모습에서 은혜를 아는 동물로, 늙은 아비 양에게 젖을 빨리며 봉양하는 모습에서 효도를 깨닫게 한다.
양은 또한 정직과 정의의 상징이었다. 양은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을 갖고 있다. 우리 속담에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는 말이 있다. 양띠인 사람은 양처럼 너무 정직하고 정의로워 부정을 지나치지 못하고 너무 맑아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양을 치고 기르는 사람을 ‘선한 목자’라고 한다. 성서에 맨 처음 나타나는 동물이 양이고 500회 이상 양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맨다’는 성서의 구절을 비롯해 예수 자신이 양을 치는 선한 목자(牧者)였다.
동양의 신선들도 양을 기르며 타고 다녔다. 어질고 착한 양치기 소년 황초평전(黃初平傳) 설화를 소재로 한 조선시대 그림에는 채찍을 들고 있는 황초평과 그 뒤에 흰 양들이 그려져 있다. 비록 두세 마리의 양을 그렸지만 이미 수만 마리의 양이 따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양 꿈을 꾸고 임금이 되기도 했다. 이성계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의 얘기다. 그가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고 하자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놀라 잠에서 깼다.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찾아가 꿈 이야기를 했더니 대사는 곧 임금에 등극할 것이라고 해몽했다. 즉 한자의 ‘羊’에서 뿔과 꼬리에 해당하는 획을 각각 떼면 ‘王’자만 남게 돼 곧 임금이 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그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매 양 꿈은 길몽으로 해석됐다.
양은 사람에게 안식과 여유를 주는 동물이기도 하다. 보통 잠이 오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양을 센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어느덧 머릿속은 양 떼 목장이 되면서 몽롱해진다. 영어 단어 ‘sheep’과 ‘sleep’의 연상 작용도 있지만 양 떼에서 느껴지는 안온한 분위기가 스르륵 잠이 오게 만든다. 을미년 새해에는 수호 동물인 양처럼 모든 일이 평화롭고 정의롭게 술술 풀리기를 기원한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