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많지 않은 한국 재벌들, 능력과는 상관없이 3세들 경영권 승계 당연시 잡스 떠난 애플 가족승계 없고 포드, HP 창업자 후손들도 자신들이 회사 오너라 생각안해 재벌들 의식-제도 개선안하면 제2 땅콩회항 언제든 재연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더 큰 문제는 대한항공뿐 아니라 한국의 재벌 기업들이 획기적인 의식 전환과 제도 개선을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돌발사고는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에 있다. 아마도 조현아 전 부사장은 자신의 행동이 이렇게 큰 파장을 가져올지 몰랐을 것이다. 또 이번 일도 과거 같으면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
조양호 회장의 말처럼 자식을 잘못 교육한 데서 비롯된 개인적 문제라면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대한항공이라는 특정 기업의 가정교육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재벌가에 만연하게 자리 잡은 ‘오너’라는 특권의식의 일그러진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 국민의 충격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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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 부모에게 신입생들을 모두 기숙사에 살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또 이것이 스탠퍼드 식의 교육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부탁을 못 들어주는 내게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이 학생이 스탠퍼드라는 명문 대학의 졸업장은 받았겠지만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처럼 재벌가 자제들이 미국 대학에서조차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면 국내에서는 오죽하겠는가? 특히 대부분의 재벌 기업이 공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라는 오너 의식이 강하고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만일 오너 일가가 아니었다면 조현아 전 부사장이 40세의 나이에 부사장이 될 수 있었겠는가.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기업들이 3세로의 승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나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부회장의 경우 창업가의 후손이고 대주주인 것은 맞지만 공개된 기업의 지분을 절반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 오너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의 능력이 탁월해 경영권을 승계받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지만 단지 오너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 그 개인이나 기업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일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주식시장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오너 승계에 집착한다면 더욱더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경우 포드, HP 등 창업자의 이름을 딴 기업조차도 창업자의 후손들이 이들 회사의 오너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선 활동에 집중하고 있고 스티브 잡스가 떠난 애플에 그의 가족들이 오너로서 승계했다는 소식은 없다. 오히려 이들은 경영에 참여하든 안 하든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창업정신을 구현하는 데 힘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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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 집안은 능력과 상황에 따라서 경영자가 될 수도, 대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업의 창업정신을 구현하는 데 힘써야 한다. 후손으로의 ‘오너 승계’에 집착하기보다는 본래의 창업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기업 문화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창업가 집안에 주어진 우선적 과제와 임무일 것이다. 그래야만 ‘땅콩 회항’의 재발을 막고 재벌 기업, 더 나아가 한국 경제가 한 차원 더 높이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