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식도락]⑦송은아트스페이스 미술대상전, 레스토랑 셰프K&R의 브로콜리무침
아교 입힌 광목천 캔버스에 동양화 물감으로 그린 이진주 작가의 ‘열림과 닫힘’(왼쪽 사진)과 셰프K&R의 브로콜리마늘오일무침.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난감한 속내를 감추며 기본 메뉴로 나온 브로콜리를 한입 물었다. 윤기가 도는데 과자처럼 바삭하다. 올리브기름과 후추는 혀와 눈에 바로 잡히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후춧가루 사이사이 숨어 앉아 눈에 잘 띄지 않는 거뭇거뭇 알갱이. 잘게 다져 기름에 졸인 마늘 부스러기다.
재료는 다진 마늘 250g과 올리브기름 1L가 전부다. 냄비에 담고 약한 불로 40∼50분 끓인다. 끓이는 내내 곁에 붙어 서서 끊임없이 저어야 한다. 어느 한순간 손에 전해지는 마늘 알갱이의 느낌이 달라진다. 노릇노릇 자작자작. 즉시 불을 끄고 그릇에 담아내 식힌다. 미리 데쳐 얼음물에 식힌 뒤 물기를 쪽 빼둔 브로콜리에 이 마늘오일을 부어 무쳐 낸다. 설명은 쉽다. 적잖은 손님이 조리법을 묻고 받아 적어 갔다. 비슷하게 맛을 내는 건 당연히 만만찮다. 여럿이 둘러앉아 살짝 취하도록 술 마시기 좋은 이 레스토랑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푸짐한 제철요리보다 기본기 충실한 밑반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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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옆에 놓인 작가별 예전 전시 도록을 먼저 들춰 훑었다. 전시실에서 발길을 잡아세운 건 도록에서 튀어 보이지 않던 이진주 씨의 회화다. 상반신 벗은 여체를 살짝 민망하게 비틀면서 말라죽은 나무둥치, 팬티스타킹을 벗다 만 누군가의 다리, 전기드릴, 폐타이어, 해진 모포를 뒤죽박죽 늘어놓았다. 주제도 표현도, 아름답다기보다 불쾌하다. 하지만 흥미롭다.
가로 2.5m, 세로 1m가 넘는 그림이 여럿 걸린 전시실 한구석에 손바닥만 한 습작을 함께 걸었다. 이 씨는 관심 가는 대상을 조그맣게 여러 번 그린 뒤 수집한 이미지 파편을 한데 끌어 모아 커다란 구성을 짜낸다. 전하려는 바는 전체의 하나일 수도, 조각난 제각각일 수도 있다. 속내를 굳이 캐물어 확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시선을 붙든다.
꼬마 때 아버지 서재를 뒤지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그린 ‘세속적 쾌락의 정원’을 처음 본 기억이 떠올랐다. 섬뜩한 것이 동시에 매혹적일 수 있음을 알려준 그림이다. 혐오스러운 그 이미지를 어째서 두근두근 거듭 찾아내 뜯어봤을까. 음식이든 그림이든, 전하려 하는 바에 집중하도록 돕는 건 밑동의 자잘한 기본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