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션왕’을 통해 본 하이틴물 소재의 변화상
‘패션왕’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 우기명(주원·왼쪽)은 패션 변신을 통해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난다. 6일 개봉한 이 영화는 중고교생을 중심으로 5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뉴 제공
패션왕처럼 요즘 학원물에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빠지지 않는다. 폭력의 형태는 다양해졌고 대응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13일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레디액션 청춘’의 첫 번째 에피소드 ‘소문’에서 주인공(이동해)은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위기에 처한다. 학교에는 여자친구의 섹스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을 퍼뜨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린다. 올 상반기 개봉한 ‘한공주’의 주인공은 성폭력의 피해자이고, 7월 개봉한 ‘소녀괴담’의 귀신은 ‘왕따’로 폭력에 시달렸던 과거가 있다.
스크린 속 고교생의 고민거리도 변화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년·맨위 사진)의 주인공(이미연)은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다. 하지만 ‘여고괴담’(1998년·가운데 사진)에서 학교는 폭력이 일상화된 곳이고, ‘싸움의 기술’(2006년)의 주인공(재희)은 살아남기 위해 싸움을 배운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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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원물에는 교사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도 특징. 예전에는 비인간적인 교육제도를 개선해 보려는 주연급 교사 배역이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이 같은 ‘선한’ 교사를 찾기 어렵다. 패션왕에서 주인공의 멘토는 교사가 아닌 ‘짝퉁’ 판매업자다. ‘레디액션…’의 교사는 섹스 동영상의 상대로 의심받는 존재다. ‘한공주’나 ‘소녀괴담’에서 교사는 문제 해결을 회피하고, 9월에 나온 공포영화 ‘좀비스쿨’에선 좀비가 돼 학생을 위협한다.
교실 내 권력관계도 바뀌었다. 요즘 학원물에선 집이 좀 살거나, 주먹이 세거나, 뛰어난 외모를 가진 인물이 짱이다. 패션왕의 여주인공 은진(설리)은 전교 1등으로 서울대에 입학하지만 뿔테 안경을 벗기 전까진 무시당하는 비주류였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학원물도 사회 변화상을 반영한다. 입시 경쟁은 고질적인 데다 다루기 어려운 소재인 데 비해 학교 폭력은 사회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어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