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역구예산 챙기기]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증액된 것과 동시에 삭감 위기에 있던 정부 예산안 일부가 기사회생했다. 야당이 감액이 필요하다고 꼽은 대표적 항목 중 하나가 박근혜 대통령 공약사업인 ‘글로벌 창조지식경제단지 조성 사업’이었지만 ‘주민 개방’을 조건으로 정부가 짠 예산 55억 원이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이 때문에 기재위 안팎에서는 소속 의원들과 정부 사이에 ‘예산 맞바꾸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내년도 지출을 올해보다 20조 원 늘린 376조 원 규모의 ‘슈퍼 예산’으로 9월 편성하자 여야가 한목소리로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한 바 있다. 홍문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국회가 예산 심의에 들어간 6일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해 재정건전성 문제 등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며 “예산이 한 푼이라도 낭비되지 않도록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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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구 챙기기’에 SOC 예산 대폭 증액
13일 동아일보가 각 상임위의 예산안 예비심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증액 요구는 주로 사회간접자본(SOC)과 복지 분야에 집중됐다. 12일 예산안 심의를 마친 국토교통위원회는 3조3600억 원의 예산 증액을 요구하기로 했다. ‘교통시설특별회계’와 ‘지역발전특별회계’ 예산이 2조7900억 원 증가하는 등 주로 지역 SOC 사업 예산이 크게 늘었다.
정부가 짜둔 내년 SOC 예산안이 24조4000억 원이므로 국토교통위의 증액 요구가 반영되면 SOC 예산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SOC 투자를 대폭 늘렸던 2009년(25조5000억 원)보다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늘어난 예산은 국토교통위 소속 위원들의 지역구 관련 사업에 집중됐다. 국토교통위 예산소위 위원장인 이윤석 새정치연합 의원의 지역구인 전남 무안군의 무안국제공항 시설 확장 사업에는 200억 원의 예산이 신규 반영됐다. 개항 7년째인 무안국제공항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300여 명에 불과해 감사원 등으로부터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국토교통위는 또 대전, 경기 양주시 등 개발제한구역 주민지원 사업 예산을 130억 원 증액했으며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2148억 원) 등 소속 의원 지역구의 도로건설 사업 등을 대거 증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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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챙기기나 선심성 예산 증액이 이뤄진 것은 다른 상임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환경노동위원회는 일부 의원이 “집행률이 낮다”며 반대 의견을 냈지만 위원장인 김영주 새정치연합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구를 포함해 41곳의 하수관 정비사업 예산을 2850억 원 증액하기로 했다. 정부 편성 내년도 하수관 정비사업 예산 400억 원의 7배 수준이다.
○ 창조경제 예산 등은 삭감
사업 부진 등으로 기재부가 삭감한 예산을 상임위가 소관 부처의 요구를 받아들여 되살린 선심성 예산도 적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는 정부 예산편성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던 ‘밭 기반정비’ 사업 예산 140억 원을 다시 반영했으며 정무위는 민간투자 유치 부진으로 300억 원만 편성된 금융위원회의 ‘해운보증기구’ 예산을 500억 원으로 늘려줬다.
최근 누리과정을 둘러싼 재원 갈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복지예산 역시 크게 늘었다. 보건복지위는 경로당 냉난방비 예산 600억 원을 증액하기로 했으며 여성가족위는 아이돌봄 지원사업 등 보육사업에 160억 원, 청소년 방과 후 활동 지원사업에 110억 원을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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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관계자는 “의원들이 선심 쓰듯 예산을 증액해 ‘상임위 요구를 다 받아들이면 예산이 600조 원이 돼도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라며 “재정 악화를 우려했던 태도와는 딴판”이라고 말했다.
세종=문병기 weappon@donga.com·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