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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사가 수술… 대부업체 낀 ‘후불제 성형’ 기승

입력 | 2014-11-06 03:00:00

성형외과 의사회 “불법-탈법 극에 달해” 청와대에 호소… 실태 어떻기에
서울 강남에만 2300여곳 추정… 병원들 中환자 유치 무한경쟁
브로커에 진료비 90% 떼주는 곳도… 업계 “이대로 가면 수년내 공멸”




성형외과 의사 A 씨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와 근로계약서를 쓰며 고민에 빠졌다. 계약서엔 ‘환자가 자신을 집도의로 알고 있는 경우는 진료비의 2%를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이는 A 씨가 이름만 빌려주고, 다른 이가 수술을 하는 ‘유령 수술’을 할 경우를 의미했다. A 씨는 양심에 찔려 망설이긴 했지만 생계 때문에 어쩔수 없이 계약을 했다. 업계에선 강남 일대에만 대리 수술을 전담하는 의사와 무자격자가 200∼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대 의대를 나온 성형외과 원장 B 씨는 한 달에 두 번 중국에서 수술을 한다. 현지 수술은 단기 의사 행위 면허가 필요하지만 브로커의 안내로 찾아간 병원에선 면허 없이도 가능했다. B 씨는 매번 수술로 받는 금액의 50%를 브로커에게 떼어준다. B 씨는 불법인 줄 알지만 어려워진 병원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 유령 의사, 대출 알선, 원정 수술…

최근 성형외과들의 불법과 탈법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상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장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성형외과들의 불법과 탈법 때문에 이대로 두면 업계가 수년 내 공멸할 거다. 의사들의 자정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당국의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성형외과의사회는 최근엔 청와대에 불법과 탈법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 강남 지역 성형외과 업계는 최근 크게 술렁였다. 의사 50여 명, 직원 500여 명인 국내 최대 모 성형외과가 중국에 매각됐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제 올 것이 왔다”는 말까지 나왔다. 해당 성형외과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불법 브로커, 대리 수술 등 온갖 탈법과 일부 대형병원의 환자 싹쓸이 등으로 운영난을 겪는 성형업계가 한계에 이르자 이런 소문이 나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성형외과는 1500여 곳. 하지만 업계에서는 서울 강남 지역에만 미신고업체 등을 포함해 총 2300여 곳이 몰려 있고, 여기 종사하는 인원은 3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본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불법 대부업체를 통해 진료비 대출을 알선하는 ‘후불제 성형’도 문제다. 대출 알선과 관련해 지난해 서울강남경찰서는 병원 3곳과 대부업체를 적발했지만, 업계에서는 이것도 빙산의 일각이라고 본다. 후불제 성형은 대부업체가 환자를 병원에 알선해 주면 병원은 수술을 해 주고, 추후에 대부업체가 환자에게 수술비를 받아서 45%를 수수료로 공제한 뒤 병원에 지불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불법 고리대금업인 셈이다.

○ 브로커가 진료비의 90% 챙기기도

강남 성형외과 고객의 대부분은 중국 환자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 1만6282명이 국내에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다. 중국 환자는 브로커를 통해 병원에 오면 대부분 현금 결제해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외부 실장’으로 불리는 브로커들은 유학생, 조선족, 여행사 직원 등 다양하다. 브로커는 보통 총 진료비의 30∼50%를 받는데, 요즘은 90%까지 가져가기도 한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중국 환자가 없으면 병원 운영이 안 된다. 이들을 데려오는 브로커가 ‘갑’이고 우리는 ‘을’”이라며 “브로커에게 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박영진 성형외과의사회 기획이사는 “과도한 광고비와 브로커 문제 등으로 불법이 발생하고 있다”며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수술의사 인증제 도입 등을 당국이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병선 bluedot@donga.com·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