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수 경제부 기자
최근 꽉 찬 e메일함을 정리하다 보니 7월 말부터 ‘기술금융’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권 보신주의’를 여러 차례 질타하며 기술금융 활성화를 주문한 뒤 나타난 현상이다. 신상품 자료에도, 은행장의 기업현장 방문 자료에도 기술금융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기술금융만큼은 아니어도 6월 이후 눈에 많이 띈 단어가 있다. 바로 통일금융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통일구상’을 거듭 강조한 이후 금융권에도 통일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NH농협은행이 지난달 말부터 판매하는 ‘NH통일대박 정기 예·적금’도 이자의 1%를 기금으로 조성해 남북 농업협력사업을 지원한다. NH농협카드는 지난주 카드 이용액의 0.01%를 기금으로 만들어 통일단체에 지원하는 ‘통일대박 원코리아 카드’도 내놓았다.
통일금융을 연구하는 전담조직을 세운 은행도 적잖다. IBK기업은행은 ‘IBK통일준비위원회’에 이어 IBK경제연구소에 ‘통일금융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신한은행도 경영기획그룹장을 위원장으로 한 ‘통일금융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KDB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는 내년 1월 통합을 앞두고 통일금융협의체를 만들었다. 통일 전후를 대비한 경영전략 수립이나 독일 통일금융 사례 연구, 관련 상품 개발이 전담 조직의 업무다.
통일금융 상품을 통해 통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통일 재원 마련에 일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들의 이런 움직임은 반갑다. 통일 과정에서 금융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은행권에서 통일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도 당연히 긍정적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통일금융’ 열기가 한 차례의 바람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에 맞춘 ‘녹색금융’ 열풍이 이번 정부 들어 ‘잊혀진 존재’가 된 것처럼 말이다. 당시 우후죽순 쏟아졌던 녹색금융 상품은 현재 대부분 판매가 중단됐다.
통일금융 상품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금융권의 통일연구가 통일시대를 대비한 초석이 되길 바란다. 통일금융도 제대로 하면 대박이 된다.
정임수 경제부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