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이 각 부처 장관과 차관급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직무성과 평가와 평판 조회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과거 정부 때부터 개각을 앞두고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조사를 은밀하게 했다. 그러나 이병기 국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치관여’ 네 글자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겠다”고 한 사람이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 개입 논란을 살 수 있는 활동은 다시 하지 말아야 한다.
역대 정부의 인수위원회는 예외 없이 국정원의 국회 정부부처 상시출입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다 슬그머니 없던 일로 되거나 조직을 축소한 것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에 그쳤다. 지금 국정원은 역대 국정원과는 다르다. 대통령선거 댓글 사건 등으로 위상이 실추돼 강도 높은 개혁 플랜을 가동하고 있다. 두 달 전에는 국정원 요원의 국회 정부부처 상시출입을 금지하고 관련 조직도 축소 폐지한다고 발표까지 했다. 국내 정보를 수집·분석하다 보면 종종 옆길로 빠져 국내 정치에 악용되는 일이 있는데 그 싹을 자르기 위해 상시출입을 막은 것이다.
청와대가 국정원의 국내 정보 보고에 관심을 갖는 한, 정보기관의 속성상 그 수요에 맞추려고 기를 쓸 수밖에 없다. 심지어 청와대가 계속 국정원에 개각용 평가보고서 같은 것을 요구하면 국내 파트 축소와 같은 국정원 개혁은 결국 물 건너가게 된다. 이 원장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과거 관행에 안주하기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한 지시를 벌써 뒤집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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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국정원은 평소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등의 ‘인사 존안자료’를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다. 공직자의 비리 정보는 청와대를 거치거나 바로 검찰 등 수사기관에 넘기기도 한다. 바로 이런 정보력을 바탕으로 국정원은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국정원은 지금 대북 및 대외정보력 강화에 힘을 모두 쏟아도 모자랄 판이다. 이제는 청와대가 대통령직속 정보기관을 개각용 뒷조사에 동원하는 잘못된 관행을 단절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