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家 허문 화백 4代 5인의 그림 모아 ‘운림산방’전 열어
‘운림산방’의 4대 임전 허문 화백은 “운림산방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도록 애쓰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했다. 그림은 ‘구름과 안개의 화가’ 임전의 2011년 작 강무(江霧).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소치 가문의 4대 5인의 그림을 한데 모은 ‘운림산방 4대전’이 8∼2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4대인 임전의 회고전 ‘붓질오십년’을 겸해 열리는 전시다. 운림산방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기 위한 홍보전이기도 하다.
“소치의 고손자이자 제 조카인 4명도 한국화를 하고 있으니 5대 9인입니다. 얘들은 아직 그림이 어려 이번 전시에선 제외했어요. 5대째 화맥을 이어가는 집안은 허소치 일가밖에 없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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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에 요절한 3대 임인 허림이 별세한 해에 그린 ‘유월 무렵’. 물감을 아끼려고 흙으로 점을 찍어 그린 뒤 물감을 입혀 ‘토점화’ 또는 ‘색점화’라고 불린다. 운림산방 제공
남도의 외딴섬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자란 소치는 ‘스스로 일깨운 그림 재주’로 “압록강 이동엔 소치만 한 그림이 없다”는 찬사를 받으며 남종화의 거봉이 됐다. 붓에 먹을 조금만 찍는 ‘갈필법(渴筆法)’의 원조로 이 화법은 소치 가문을 남도 화단의 중심에 올려놓게 된다.
2대 미산은 운림산방에서 농사일로 어렵게 가세를 꾸려가며 24세의 늦은 나이에 그림 공부를 시작했고, 화맥의 뿌리를 목포로 옮겨 내렸다. 집안에선 소치와 남농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한다.
3대 남농 역시 한겨울 냉방에서 지내다 동상에 걸려 한쪽 다리를 잘라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결국 그는 갈필산수로 독특한 화풍을 일궈내 임전의 표현에 따르면 ‘화가 재벌’이 됐다. 대한민국문화훈장을 받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4대 임전도 어린 시절엔 “그림 그리면 밥 굶는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셔서 백부(남농) 댁에서 8남매와 함께 자랐소. 어깨너머로 익힌 것을 눈대중으로 조잡한 그림들을 그려 숨겨 놓았는데 그걸 백부께 들켰지요. ‘썩을 놈, 그림 그리지 말랑께는’ 하시며 전부 찢어버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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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가난한 사람들이 그림을 했지만 요즘은 부자들이 그림을 하잖아요. 붓을 맘대로 쓰고 먹맛을 제대로 내려면 10년은 해야 하는데 이렇게 어려운 걸 귀하게 자란 사람들은 안 하지요. 이런 한국화는 앞으로 나오기 힘들 거요.”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