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4대 천왕(天王)’ 중 한 사람인 어윤대 KB금융 회장의 그늘에 가린 실권 없는 바지사장이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금융계 MB 인맥 청산 과정에서 기회가 왔다. 강원 영월 출생인 임영록을 강원도 실세들이 밀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회장 인선 때 청와대 한 인사가 ‘임영록이 불가(不可)한 이유’를 장문의 보고서로 올렸다가 대통령으로부터 “인사에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며 매서운 레이저를 맞았다는 뒷담화도 있다.
박근혜 대선캠프 출신으로 정권 실세들과 끈끈한 연이 있는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같은 서울상대에, 금융연구원 출신인 이건호 행장과는 악연이었다. 취임 초 부행장 인선을 놓고 충돌한 것은 서막이었을 뿐,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행장이 금융감독원에 달려가고 급기야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로 번졌다. 회장과 행장의 갈등을 봉합하려고 절에서 단합대회를 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배(毒杯)가 될 줄이야. “회장만 왜 독방을 쓰느냐”며 행사 도중에 판을 엎고 집으로 간 이 행장의 돌출 행동에 KB금융 경영진의 갈등을 보는 여론은 따가워졌다.
임영록은 행장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보이지 못했다. “나는 억울하다”고만 호소했을 뿐 명예롭게 물러날 타이밍을 놓쳤다.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 얼굴을 내밀지 않고 실세의 인사 청탁도 잘랐다니 정치 감각이 없든가, 배짱이 두둑하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가 ‘경륜과 덕망을 갖춘’ 훌륭한 리더였느냐는 문제와 별개로 중도에 밀어낼 만큼 중죄(重罪)를 저질렀는지 궁금하다. KB금융 사외이사인 김영진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시험을 쳐서 담임선생이 80점을 줬는데 교감이 60점으로 내렸다가 교장이 다시 40점으로 낮춰 과락(科落)시켜 학생을 퇴학시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관치금융을 꼬집었다.
임영록과 이건호는 물러났지만 경징계와 중징계 사이를 오락가락한 금융위, 금감원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경제 관료들이 뚝딱 만든 금융지주회사법의 적폐는 놔두고 회장에게 도의적 책임만 물은 면피 행정은 아니었나. 또 다른 낙하산을 보내기 위해 임영록을 잘랐다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쫓겨난 임영록의 죄목(罪目)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