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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만에 말바꾼 ‘공수표 정의화’

입력 | 2014-09-27 03:00:00

[식물국회 더 늘린 국회의장]
‘우유부단 리더십’ 도마에…




“추석 연휴 직후 신속하게 본회의를 열어 이미 부의 중인 법안과 안건을 처리해야 한다.”(4일)

“국회를 계속 공전시키는 것은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것으로 보아 의사일정을 최종 결심했다.”(16일)

“어려울 때일수록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참뜻을 되새겨 한 번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26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이달 들어 국회 정상화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한 발언들이다. 신속한 본회의 개의를 촉구한 지 12일 만에 “최종 결심했다”던 정 의장은 열흘 뒤 “한 번 더 노력하자”고 말을 바꿨다. 좌고우면 끝에 자신이 한 약속을 뒤집고 ‘식물국회’를 나흘 연장하는 결정을 내린 정 의장의 허약한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직권으로 결정한 일정, 직권으로 뒤집다

정 의장이 16일 의사일정을 정한 것은 “회기 전체 의사일정의 작성에 있어서는 국회 운영위원회와 협의하되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에는 의장이 이를 결정한다”는 국회법 76조 3항을 따른 것이다. 정기국회가 시작됐지만 국회 마비사태가 이어지자 ‘국회를 해산하라’는 성난 민심이 들끓었다. 16일 열린 운영위에서 여야가 의사일정 합의에 실패하자 나름의 ‘결단’을 내린 것.

하지만 정 의장은 이후에도 여야 간 합의가 중요하다는 명분하에 법에 정해진 국회의장의 의무를 이행하기보다는 정치적 ‘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당 내에서는 “정 의장에게 사심(私心)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공공연히 나왔다. 정 의장 측 인사들은 “의장이 26일에 법안들을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해 왔지만 결국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의장이 직권으로 일정을 결정했다가 직권으로 바꾸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고 씁쓸해했다.

○ 새누리당, “의장에게 뒤통수 맞았다”

정 의장 측은 국회 파행을 막기 위해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사의까지 표명하며 강력하게 항의했고, 새누리당이 30일 본회의 전까지 야당과의 협상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정국은 더 꼬이는 양상이다. 새누리당 이장우 원내대변인은 “30일 국회의장이 약속한 본회의에서 법안 처리가 있기 전까지 어떠한 협상도 없다”고 못 박았다.

정 의장은 안건 처리를 나흘 미룬 명분 중 하나가 그 사이에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과 의사일정에 대한 추가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룰 것을 촉구한다는 것이었지만, 새누리당은 협상 거부를 선언하면서 정 의장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새누리당은 26일 오전까지만 해도 정 의장이 법안 처리를 할 것처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뒤통수쳤다’며 신뢰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스스로 마지노선으로 정한 30일 야당이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정 의장의 운신의 폭은 크게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은 이날 본회의에서 “며칠의 시간이 정기국회 전체의 정상화를 위한 인고의 시간이 된다면 비난은 감당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본회의 산회 직후 30일 본회의에서의 세월호 특별법 처리 가능성에 대해 “최선을 다해 보겠다”라고만 말했다. 30일 본회의 참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30일 본회의에 야당이 국회에 들어오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의장이 책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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