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다만 서울대 명예교수인 한상진 위원장이 이끄는 대선평가위원회가 어떤 평가 결과를 내놓을지는 관심사였다. 대선평가보고서는 당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 민생을 외면한 이념논쟁과 계파갈등, 운동권식 대결정치가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중에서도 구시대적 계파정치 청산이 최우선 과제로 꼽혔다. 하지만 친노의 반발로 보고서는 쓸모없는 휴지가 됐고, 결국 문 위원장은 사실상 아무 일도 한 것이 없게 됐다.
이번에 다시 비상대책위를 맡은 문 위원장이 당 구성원들을 향해 연일 말대포를 쏘아댔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 “당을 나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 주겠다” “해당 행위자는 개작두로 치겠다”는 말도 했다.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당내 분란과 일부 의원들의 볼썽사나운 언동(言動)에 대한 일종의 군기잡기다. 사실 5선에 당 대표를 지낸 관록에다 화려한 언변, 괄괄한 성격으로 본다면 군기반장 감으로는 그만한 적임자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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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문 위원장은 혁신을 다짐했다. 정치혁신실천위원회도 만들고 작년과 달리 막강 파워의 인사들로 비대위를 꾸렸다. 외견상으론 혁신에 제격인 것 같은데 계파 수장들을 죄다 끌어모았으니 다른 건 몰라도 당의 최대 고질병인 계파주의 청산은 물 건너간 셈이다. ‘친노 강경세력의 들러리’ ‘부족장 회의’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실 새정연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혁신다운 혁신을 해본 적이 없다. 선거에서 지고 위기가 닥치면 여기저기서 혁신을 합창하지만 간절하게 혁신을 바라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당의 잦은 이합집산으로 이념과 행동양식에서 구성원들의 이질성이 워낙 크다. 혁신은 곧 중도·실용 노선의 지향, 운동권 정치와 계파주의의 청산을 의미하는데 계파의 동아줄에 매달려 나름의 이념형 운동권 정치로 주가를 높여온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 스스로 밥줄을 끊는 일에 동참하겠는가. 누가 나서든 혁신이 어려운 이유다.
결론적으로 나는 인적 물갈이 없이는 새정연의 근본적인 혁신이 어렵다고 본다. 다만 당의 제도나 운영방식으로 구성원 간의 이질성이 도드라지거나 충돌하는 것을 완화시킬 수는 있다. 문 위원장이 거창한 혁신을 남발하기보다 계파 수장들과 더불어 그 초석을 까는 일이나마 제대로 해 멈춰 선 민생정치를 작동시켰으면 좋겠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