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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의 지하실서 건진 눈물나는 詩”

입력 | 2014-09-17 03:00:00

이성복 시인, 미발표 시 출간… 산문21편-대담16편도 내놔




이성복 시인(왼쪽)은 “시인으로서의 인생이 시작도 끝도 없는 해안 절벽을 따라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열화당 제공

“첫 시집을 내기 전 작고한 김현 선생께 시를 보여드렸죠. 김 선생께서 ‘이만 하면 된다’며 몇 편 뽑아주고 시 방향을 제시해주셨어요. 그래서 첫 시집에서 빠진 시는 성적이거나 연애, 사랑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번 시집은 첫 시집의 지하실이랄까요.”

이성복 시인(62)이 1976년부터 1985년까지 미발표 시를 묶은 시집 ‘어둠 속의 시’(열화당)를 출간했다. 이 시인은 1977년 ‘정든 유곽에서’로 계간지 ‘문학과 지성’에서 등단해 1980년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내놓았다. 이후 1986년 2집 등 시집 6권을 더 내놓았다. 그는 16일 경기 파주출판도시 열화당 건물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서 “(출간 소회를 길게 밝히려니) 울 수도 있으니까 안 하겠다”며 직접 써온 글을 미리 돌렸다.

“그 시절 저는 좋은 예술가가 되고 싶었답니다. 그 시절에는 열정과 고통과 꿈이 있었답니다. 저에게는 오직 그 시절만이 아름답습니다!”

슬픔을 빼고 그의 시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 시인은 “서정시는 비정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삶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가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비유를 바꿔치기해서 삶이 얼마나 달라 보일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이 시인은 시집에 수록된 시 150편 중 ‘첫사랑’, ‘병장 천재영의 사랑과 행복’, ‘병장 천재영과 그의 시대’를 가장 친근한 시로 꼽았다.

“…내 살아 있는 어느 날 어느 길 골목에서 너를 만날지 모르고 만나도 내 눈길을 너는 피할 테지만, 그날 기울던 햇살, 감긴 눈, 긴 속눈썹, 벌어진 입술. 캄캄하게 낙엽 구르는 소리, 나는 듣는다.”(‘첫사랑’ 중)

이 장문의 시는 한 여인을 향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노래한다. 하지만 이 시인은 “그런 여자가 있었나 생각도 안 난다. 난 만난 적이 없다”며 웃었다.

시집과 함께 1976년부터 최근까지 쓴 산문 21편을 묶은 ‘고백의 형식들’, 1983년부터 올해까지 이뤄진 대담 16편을 묶은 ‘끝나지 않은 대화’도 함께 출간했다.

파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