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마음을 치유한다
“정말 많은 영화를 본 것 같아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부터 오래된 예술영화까지 시간이 나는 대로 영화를 봅니다. 일할 때도 영화 OST를 틀어놓거나 영화를 보면서 일을 할 정도로 영화를 좋아해요. 영화를 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위로도 많이 받았거든요.”
그는 딸아이와 자주 영화를 보는 편이다. 올해 초에 <수상한 그녀>를 보고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 나이든다는 것에 대한 의미, 가족에 대한 희생, 인생에 대한 후회가 잘 버무려진 훌륭한 영화라고 평가한다.
이와 함께 치유의 측면에서 볼만한 영화로 <우아한 거짓말>을 추천했다. 죄책감, 투사, 용서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어서 현대인의 삶을 잘 대변한다는 것.
최명기 소장에게 인생은 한 편의 영화를 찍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엔 대본이 없다. 영화로 따지면 배우가 전체 스토리도 모르고 연기를 시작한 셈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 사람에 대한 애정
최명기 소장은 중앙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 아산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MBA와 HSM과정을 이수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그래서 진료과목 중 가장 인문학과 연관이 있는 ‘정신과’를 택해 정신과 전문의가 됐다. 그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벅찬 순간이 온다고 말한다.
“연극배우는 연기에 몰입되어 관객과 소통하는 순간, 가슴이 터질 것 같이 흥분합니다. 가수는 관객들이 감동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전율을 느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정신과의사는 환자의 얘기를 듣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찡하는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환자 역시 제가 자신의 얘기에 완전히 몰입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즐거운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합리화를 위해 치료를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부부를 치료할 때, 한 시간 내내 상대방을 몰아세우고 상대방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치료자를 통해서 듣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면 최 소장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치료자(의사)도 공격해요. 부부치료를 통해서 서로가 변화해야 하는데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변화를 강요하고 치료자가 자기편만 들어주기를 바랄 때 난감해요. 이와 함께 자녀를 통제만 하려고 하고 대리만족의 도구로 삼는 부모를 대할 때도 쉽지 않아요.”
결국, 부모가 아이를 너무 몰아세우고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니까 아이가 자신감이 없고 친구를 사귀지 못 한다는 것. 그러한 부모는 자식을 컨트롤 하듯이 치료자도 컨트롤 하려 하지만, 치료자가 부모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치료에 대해서 비난을 하기도 한다.
왠지 모르게 ‘정신과 전문의’라고 하면 직업의 특성상 주변 사람들을 섬세하게 배려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것 같다. “본인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최명기 소장은 자신을 평범하고 약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주차장에 자리가 세 군데 이상 비어 있지 않으면 주차를 못 합니다. 그래서 서울 시내에서는 거의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만 이용해요. 그리고 저는 무척 걱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안절부절못하고, 시간 안에 못할까 미리미리 일을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남들이 나를 싫어해도 잘 눈치채지 못하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테라피다
소통이 화두가 되는 세상이지만, 최명기 소장은 침묵도 소통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수다를 떨어야 살 수 있고, 누군가와 말을 하지 않으면 답답해 견딜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해도 묵비권을 지키는 이가 없는 것이다.
“너무 소통을 강요하는 것도 옳지 않아요. 인간에게는 소통하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침묵도 소통의 한 부분으로 소통강박증도 좋지 않죠. 상대방이 원치 않는데 소통을 강요하는 것 역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원할 때, 원하는 정도로, 원하는 형태로 할 때 소통이 의미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테라피에요. 흔히 많은 사람이 인생의 목표를 찾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대다수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만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살다 보니까 그들의 삶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나 로댕을 만나기 전에 돌은 그저 돌에 불과했습니다. 돌이 아무리 자신이 무엇이 될까 생각해도 소용이 없어요. 세상에 나와서 깎이고 부서지면서 지금의 돌이 된 것이지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변화하고, 생각하는 인생 테라피가 최고의 테라피입니다.”
흔히 면역력이 떨어지면 아무리 센 항생제를 써도 병을 고칠 수 없다. 모든 약은 정상적인 신체 면역력이 유지될 때 소용 있는 법. 마찬가지로 모든 테라피는 인생 테라피를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으로 최명기 소장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줄이고 좋아하는 것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본인이 중시하는 돈이나 명예 등과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법칙이다. 그리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되 과거, 현재, 미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불행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현재의 성취에 매달리는 것은 자신을 힘겹게 할 뿐이다.
Tip. 최명기 소장의 ‘영화 감상법’
영화를 즐겁게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이나 평론가들의 평가에만 의존해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다. 이는 좋은 영화 콤플렉스다. 그러나 ‘좋은 영화’의 기준은 없다. 스스로가 재미있거나 감동을 느끼면 좋은 영화다. 평가가 좋다고 해서 이해할 수 없는 영화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애쓰지 말자.
2. 보고 싶을 때 본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영화는 보고 싶을 때 봐야 한다. 영화관에서 불이 꺼지고 영화를 알리는 서라운드 음향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잊게 된다. 이른 아침부터 극장에 가서 기다리다가 조조영화를 보건, 새벽에 잠에서 깨어 심야영화를 보건 내가 보고 싶을 때 영화를 보면 더 즐겁다.
3. 혼자 보는 것을 두려워 말자
영화를 같이 볼 이가 없다면 혼자 보는 것을 두려워 말자. 정말 영화가 마음에 든다면 여러 번 보는 것도 영화를 감상하는 좋은 방법이다. ‘내 생애 최고의 영화 BEST3’ 정도는 정해두고 외롭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다시 볼 수 있는 영화 몇 편쯤은 간직해두자.
4. 영화보다 그 순간을 즐기자
어떤 영화건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영화를 보면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이와 영화를 볼 때는 그 순간의 행복함을 즐겨도 좋다. 영화 줄거리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기사·사진 제공 : 엠미디어(M미디어 www.egihu.com) 김효정 기자(kss@egihu.com), 권오경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