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문화부장sjkang@donga.com
소년이 말했다. “만약 너와 결혼하지 못하면 신부가 될 거야!”
소녀 아버지의 반대로 만남은 지속되지 못했고, 훗날 소년은 신부가 됐다.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세 자녀와 여섯 손주를 둔 할머니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놀라운 소식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에게 전능하신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교황으로서 잘해 나가리라 믿어요.”(‘안녕하세요, 교황입니다’·더난출판)
어디를 가든 늘 첫 번째 요구사항이 ‘작은 방과 작은 자동차’라는 교황의 ‘프란치스코식 비정상의 정상화’는 화제가 됐다. 해외 순방 때 짐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니는 교황에게 이유를 묻자 그는 답했다. “그게 정상이죠. 우리는 정상적인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버스를 즐겨 타고 소박한 은십자가를 지니며 자신의 생일에 노숙인을 초청해 식사를 한다. 방한길에 오르는 교황을 위해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화동(花童)을 보내겠다는 주바티칸 한국대사관 측 제안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며 정중히 거절한 것도 그답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거창한 몸짓이나 대단한 말이 아니라 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 때문”이라는 이병호 주교의 글을 읽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가장 큰 것으로도 가둘 수 없지만 가장 작은 것에 담겨지는 것, 이것이 하느님다운 것”이라는 예수회 설립자 로욜라의 성 이그나티우스 묘비명은 교황이 즐겨 인용하는 금언이라고 한다. 큰 울림을 가져오는 건 역시 작은 것들이다.
일각에서 남미의 해방신학을 들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향’을 따지거나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의 행동을 둘러싼 해묵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안타깝다. 교황을 급진주의자니, 보수주의자니 하는 이념적 잣대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내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해 편 가르기 식으로 이용하거나, 교황의 발언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교황은 ‘해결사’가 아니다.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이 순교자의 나라, 한국의 땅을 밟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아시아 방문이다.
교황이 내 편을 들어주길 바라기보다 무슬림의 발에 기꺼이 입 맞추고, 예수회 소속이면서도 ‘경쟁 수도회’인 프란치스코회의 성자를 교황명으로 택한 화해와 용기에 주목하면 좋겠다.
강수진 문화부장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