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을 수리하기 위해 독일에서 면벌부 판매를 독려하자 신학자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이를 비판하였다.’
한 중학교 역사책의 ‘루터, 종교개혁을 시작하다’ 단원에 나오는 대목이다. 면벌부? 왠지 생경하다. 그래도 이 단어는 국립국어원 웹사이트에 면죄부와 함께 표제어로 올라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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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0여 년이 흐른 지금 면죄부와 면벌부 중 누가 언중의 입말로 자리 잡았을까.
면죄부의 압승이다. 말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 신문이나 방송도 마찬가지다. ‘면죄부를 줬다’ ‘면죄부를 받았다’는 표현은 많아도 면벌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면벌부는 일부 사전과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박제된 말이 되고 말았다.
2009년에 나온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등 대부분의 사전들도 면죄부만을 표제어로 삼고 있다. 요즘 가톨릭에서는 면죄부와 면벌부도 옆으로 치워놓고 ‘대사(大赦)’라는 말을 많이 쓴다고 한다.
애당초 언중이 아무런 의심 없이 면죄부를 받아들인 건 잘못이다. 그렇지만 세력을 넓혀 입말로 자리 잡았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언중의 말 씀씀이를 헤아리지 않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어떤 말을 없애거나 만든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처럼 언중이 면죄부만을 쓴다면 대세로 받아들이는 게 옳다. 면벌부를 접한 학생들은 혼란스러울지 모르나 사회에 나오면 자연히 정리될 것이다. 필자의 이런 주장에 국립국어원은 ‘면죄부’를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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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