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은 사회평론가
하지만 화가 나는 부분은 따로 있다. 한 번이라도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간단한 회의라고 해도 누군가는 그 회의를 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준비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게 또 이런 일이다. 하물며 대통령이 청문회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직후에 전국에 생중계되는 인사청문회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 청문회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무자가 자료를 요구하고 정리해 회의장 세팅까지 해놓았을까? 그뿐인가. 후보자를 모시고 나가서 식사했으니 사전에 식당 예약도 했을 것이다. 정회 와중에 폭탄주를 제조해서 ‘권커니 잣거니’ 하며 서로의 수고에 격려와 덕담을 건넸을 것이다. 법인카드로 계산하면서 지출 명세에 주류가 찍히지 않도록 영수증도 챙겼을 테고, 후보자는 사퇴했어도 그 식사 비용은 ‘장관 후보자 간담회’ 등 명목의 문서로 보고되고 지출 처리될 것이다.
각 부처 실무자들은 물론이고 청문회를 생중계한 방송국 관계자들, 청문회를 준비한 국회의원들과 그 보좌관들… 실무자부터 부서장들까지 이 정부 들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결국 낙마할 후보자들과 그 뒤처리를 위해 일했을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그 국정(?)을 처리하는 만큼의 시간이 이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민생이나 국민 행복에 쓰이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모르긴 몰라도 이 일을 처리하느라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쌓이거나 뒤로 미뤄졌을 것이다. ‘부서의 새 수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넘기는 일도 많았으리라.
2기 내각을 이끌어 나갈 고위직 임명은 당연히 중요하고 급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좋은 리더라면 사안에 걸맞은 판단을 내리고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옳다. 하지만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내려졌는지 국민은 알지 못했다. 국민들은 그저 중요하고 급한 일이 짜증스러운 사안으로 바뀌는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게 시간이든 예산이든 사람의 능력이든 누군가의 마음이든 무한정 공급되지 않는다. 국민의 인내심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 골라도 매번 그런 사람만 고르냐”고 탄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 알 것인가? 인사청문회 과정 중에 쏟아진 언론 보도만 해도 몇 건인가? 이 사안을 취재하고 보도한 사람들, 그 언론 보도를 읽은 사람들의 시간, 이 글을 쓰느라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새삼 화나는 마음을 누르는 나 같은 사람의 시간까지 합치면 이 모든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손실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게다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후보자를 지명하면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할 테니 말이다.
분야 종사자로서 곧 지명될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게 바라는 글귀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11년 전 같은 직을 맡았던 분의 취임사 중 일부다. “문화란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의 소통의 형식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문화의 역할입니다. … 저는 우리 문화관광부가 국민들에게 ‘문화가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꿈을 부여하는지’ 안내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정지은 사회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