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배산임수 주거 꾸리면서 사람은 山을 닮고, 山은 사람 닮아”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한길사)을 펴낸 최원석 교수. 20년 넘게 산만 연구한 그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에서 산이 갖는 다양한 의미를 인문학으로 풀어냈다. 최원석 교수 제공
―인문학은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산을 인문학으로 풀어낸다는 게 생경하다.
“산을 자연생태학이 아닌 인문학적 시각으로 연구한 건 흔치 않다. 그러나 우리 조상의 산에 대한 인문학 전통은 대단하다. 서양과 달리 사람과 자연이 하나라는 합일(合一)의 정신이 있어 사람과 산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산을 탐구하면 인간의 삶이 보이고, 그게 바로 인문학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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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각 고을에서 경관이나 취락의 중심이 되는 큰 산을 진산(鎭山)이라고 하는데 우리와 중국의 진산 개념이 매우 달랐다. 중국에선 명·청대까지 산세가 웅장하고 기이해 유명한 몇 개의 산만 진산으로 봤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 중기에 전국 331개 고을 중 255개에 진산이 있었을 정도로 흔했고 마을과도 5리 이내로 가까웠다. 또 형태나 높이도 평범했다. 그만큼 인간의 삶과 밀착된 친근한 개념으로 산을 바라본 것이다.”
―책에 시간이 흐를수록 산이 인간화됐다는 얘기가 있던데 무슨 뜻인가.
“우리나라에선 산의 개념이 ‘천산(天山)→용산(龍山)→조산(造山)’의 순서로 진화했다. 유사 시대 이전에는 단군 신화에서 보듯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천산이 중심이었다. 세월이 흘러 농경시대가 시작되고 치수(治水)가 중요해지자 산과 하천이 만나는 용산이 대두된다. 배산임수의 주거를 꾸리면서 산의 부족한 형세를 메우려고 흙을 옮기고 나무를 심은 것이 조산이다.”
―부족한 형세를 채운다는 게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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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명권에는 조산이란 개념이 아예 없나.
“그렇지 않다. 조산 문화의 본보기는 다른 지역에도 있다. 가장 오래된 건 기원전 22세기 고대 메소포타미아가 만든 ‘지구라트’다. 이 지역은 평지였기 때문에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신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길 바란다는 염원으로 일종의 인공 산인 지구라트를 쌓았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