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특파원
4일 뒤인 15일 오전 9시 40분경 오바마 대통령이 오기로 한 중앙정보국(CIA) 옆 터너-페어뱅크 고속도로연구소를 찾았다. 백악관 경호대의 간단한 보안 검색을 거쳐 들어간 연설장은 붉은색 벽돌로 지은 연구소 건물의 뒷마당이었다. 평소 허드레 물건을 쌓아두었을 것 같이 허름한 공간에는 연구소 직원 200여 명이 대통령을 직접 보기 위해 일찍부터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신석호 특파원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이 고속도로신탁기금 증액안을 비롯한 정부 발의 법안들을 빨리 처리하도록 국민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의회가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국민이 낸 세금을 축내면서까지 나에게 소송을 낼 생각만 하려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의회와 공화당을 표적으로 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보수적인 야당을 설득하고 달래 어찌됐건 나랏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장외를 돌며 국민을 상대로 화려한 연설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행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초라한 곳이라도 연설 주제에 어울리는 청중들을 찾아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모습은 사뭇 신선하게 다가왔다. 행사 전 며칠씩 꾸민 으리으리한 연설장에서 사전에 잘 교육받은 청중들을 향해 말하면서도 고작 대본 읽듯 ‘죽은 연설’을 늘어놓고 사라지는 한국의 대통령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