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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인조의 ‘의리 외교’와 청으로 끌려간 여인들

입력 | 2014-07-16 03:00:00

‘양다리 외교’ 광해군 몰아내고
현실 무시한 인조의 親明反淸 국토 쑥대밭 만들다
외교 국방 실패로 청군에 짓밟힌 여성들 사회로부터 다시 버림받아
美日中 각축하는 동북아 ‘전략적 외교’가 한국의 살길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왕과 왕족, 사대부 집안은 강화도와 남한산성으로 황급히 피란했다. 청에 수군(水軍)이 없어 안전하리라 생각했던 강화도 방어선은 싸울 의지도 능력도 없는 지휘관을 만나 일거에 무너졌다. 섬에 상륙한 청군은 젊고 예쁜 여자들은 닥치는 대로 능욕한 뒤 선양(瀋陽)으로 끌고 갔다. 청군을 피해 바다에 뛰어드는 여성들도 부지기수였다. 청군은 아이가 딸린 여인들을 끌고 가면서 엄동설한에 아이들을 내팽개쳤다.

전쟁이 끝난 뒤 만신창이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 속환녀(贖還女)들은 ‘오랑캐에게 실절(失節)한 여자’라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임금과 신료들의 외교 실패와 국방 소홀로 여성들이 수난을 당했는데 사회와 집안에서는 도리어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자”라는 이유로 버림을 받은 것이다.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 없다”며 속환녀 며느리와 아들의 이혼을 허가해 달라는 상소가 올라오기도 했다.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13년 전 능양군(인조)은 친명반청(親明反淸)의 기치를 내걸고 쿠데타를 일으켜 명과 청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하던 광해군을 내쳤다. 인조는 중국 대륙에서 떠오르는 태양이던 청을 무시하고, 무능한 황제와 환관들의 전횡으로 국운이 기울어진 명을 섬기다가 두 차례나 전란을 불렀다. 정묘호란의 쓰라린 경험을 했으면 성을 쌓고 군사를 기르며 실용 외교를 펼쳤어야 했는데 둘 다 소홀히 하다 9년 만에 병자호란의 치욕을 다시 겪었다.

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가 쓴 ‘병자호란’은 꼼꼼한 고증(考證)에 바탕을 둔 역사평설이지만 소설보다 더 흥미롭다. 인조는 임진왜란 때 군사를 보내 도와준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며 ‘오랑캐’ 청을 무시하는 바람에 병자호란을 불러왔고 국토는 쑥대밭이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방한 중 서울대 강연에서 “임진왜란 때 우리는 힘을 합쳐 일군을 격퇴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6·25전쟁은 쏙 뺐다.

시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의 표지석을 세우고 기념관을 만든 것은 더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일본에는 안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 초대 총리를 저격한 테러리스트라고 보는 인식이 퍼져 있다. 진보적이라는 아사히신문조차 안 의사 기념관 건립을 비판하는 사설을 썼다.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문제로 일본과 대립하는 중국으로선 ‘항일(抗日)’을 고리로 한국과 연대하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 문제에서 중국과 계속 협력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고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일본과 등을 돌리고 있을 수는 없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한다. 시진핑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그는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중국이 북을 도와준 6·25를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한 적이 있다. 시 주석이 서울대 강연에서 언급한 자주통일이 꼭 북한 주도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6·25 때 중국 인민해방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분단의 고통은 이미 끝났을 것이다.

중국엔 “미국 일본과의 무역량을 합치더라도 중국에 미치지 못하는데 한국은 왜 미국만 바라보는가” 하는 불만이 있다. 일본은 우리가 중국과 손을 잡고 과거사를 공박하는 것을 ‘정치적 도발’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동북아에서 각축하는 미국 일본 중국 사이에서 명·청 교체기의 광해군이 했던 것과 같은 실리 외교, 균형 외교, 전략적 외교가 긴요하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는 통일 후에도 한국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방어벽이다.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돌고래 국가로서 외교적 선택을 잘못해 국토를 유린당한 병자호란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과 다섯 번이나 만나 정상회담을 했으면서도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는 둘이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아베의 집권 이후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 전쟁 범죄 부인 등으로 한국을 계속 자극하는 판에 박 대통령이 선뜻 손을 내밀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베의 폭주를 경계하면서도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지 않도록 중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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