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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형준]문제는 ‘집단적 자위권’이 아니다

입력 | 2014-06-16 03:00:00


박형준 도쿄 특파원

10일 저녁 일본 도쿄(東京) 시부야(澁谷) 구 공회당의 대강당은 만석이었다. 2층까지 빈자리가 없었다.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모임인 ‘9조회’의 10주년 기념 강연에 2200여 명의 시민이 모인 것이다. 이날 주제는 ‘집단적 자위권과 헌법 9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밀어붙이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전쟁 포기,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에 위배되니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방청객 중 20, 30대도 꽤 눈에 띄었다. 이례적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거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반대를 외치는 집회에 여러 번 참가했지만 젊은이들을 만나긴 힘들었다.

실제 일본 언론사들이 실시한 집단적 자위권 관련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다. 집단적 자위권은 다른 나라가 공격을 받을 때 일본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다. 일본 자위대원들이 해외 전투에서 피를 흘려야 하니 국민적 반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사안을 왜 아베 총리는 필사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을까. 정답을 파악할 좋은 기회가 있었다. 아베 총리의 직속 자문기구인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 좌장대행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만든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고쿠사이(國際)대 총장을 올해 3월 인터뷰한 자리였다.

‘헌법 해석까지 바꿔가며 집단적 자위권에 집착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뜸 “내정 간섭에 해당하는 질문”이라며 정색을 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든 말든 한국 기자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 뒤에야 “위험이 따르는 일이지만 풍요를 즐기는 국가(일본)가 곤란한 국가의 평화 구축을 도와야 한다. 국민의 반대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고 추진 이유를 밝혔다.

그는 집단적 자위권이 일본 국내 정치 문제에 속한다고 강조했지만 한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다.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한국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한반도 안보 관련 사항은 한국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집단적 자위권이 아니다. 2012년 12월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본이 가고 있는 방향성이 문제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지난해 4월), 11년 만에 증액된 방위 예산(2013년 예산), 자위대를 대폭 강화한 신방위대강(지난해 12월), 무기 수출 금지 원칙을 47년 만에 180도 바꾼 ‘방위장비 이전 3원칙’(올해 4월)…. 이 같은 움직임의 공통분모는 군사대국화다.

아베 정권은 ‘보통국가’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 사안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역시 세계 평화에 일본이 기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포장하고 있다.

4월 1일부터 이달 13일까지 8회에 걸쳐 게재된 ‘한일 애증의 현장을 찾아’ 시리즈를 취재하며 많은 일반인을 만났다. 한국에 애정을 지닌 그들이 아베 정권의 우경화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권이 주도하는 방향성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부상, 북한의 위협, 미국의 방위비 분담 증가 요청 등이 이어지는 한 이 방향성은 바뀌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