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안전시설 ‘눈감고 아웅’
지난달부터 강화된 현행 요양병원 안전기준이 병원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사용이 불가능한데도 규정만 지키기 위해 안전설비를 형식적으로 설치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 무용지물 되어 버린 안전기준
지난달 30일 본보 취재진이 찾은 서울 A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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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는 밑이 트여 있는 자루 형태의 긴 부대로, 화재 시 창문이나 옥상에 설치한 뒤 사람이 속을 통해 미끄러져 내려오는 대피 기구다. 당연히 구조대를 설치할 창문은 사람이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요양병원 창문은 거의 대부분 완전 개폐가 가능한 미닫이식이 아닌 환기를 위해 일부만 약간 열리는 방식. 구조대를 제작하는 업체 관계자는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창문이어야 구조대를 사용할 수 있다”며 “사람이 나올 수 없는 창문이라면 구조대는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상당수 요양병원 창문이 A요양병원처럼 구조대보다 작은 크기라는 점. 병원 측은 환자들의 자살이나 낙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장은 “자살을 시도하려는 환자가 종종 있어 어쩔 수 없이 작은 창문이나 전부 열리지 않는 창문을 설치한다”며 “실제로 과거 한 요양병원에서 자녀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뛰어내려 자살한 노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층간 경사로, 안전손잡이 등도 마찬가지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은 요양병원들이 층간 경사로를 설치하고, 바닥 턱을 제거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 동작구 B요양병원의 경우 비상구에 냉장고가 들어서 있어 이동이 어려웠다. 비상탈출구가 물건 등으로 막혀 있는 셈이다. 또 법에서 규정한 대로 상당수 요양병원이 복도, 계단, 화장실, 욕실 등에 안전손잡이를 설치했지만 실제로는 이용이 어려운 곳이 많았다. 상당수 병원이 안전손잡이 앞에 휠체어, 재활기구 등 각종 물건을 쌓아 놓았기 때문이다.
○ 안전교육 안받는 간병인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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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요양병원의 경우 환자 40여 명에 간호사는 오전에 3명, 오후에 2명뿐. 그 대신 방마다 간병인들이 환자들을 돌본다. 어느 때라도 화재가 발생할 경우 간병인들의 도움이 없다면 신속한 구조는 불가능하지만 정작 이들은 안전관리 교육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양병원에는 거동이 불편한 장기 입원환자가 많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타인의 도움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다”며 “사고가 나면 어떻게 대피할지 환자 입장에서 세심하게 설계하고 관리운영 규칙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