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배가 좌초돼 원유가 유출된 엑손 발데스호 사건. 전대미문의 원유 유출사고로 꼽힌다.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김연종 유앤피 대표
‘사고는 절대 한 가지 이유로 발생할 수 없다’라는 ‘사고 이론(Accident Theory)’이 있다. 사고는 한두 가지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원인이 오랜 기간 누적돼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당시 엑손 발데스호 사고의 주요 원인은 선장의 음주운항 탓이었다. 하지만 원인이 단순해 보이는 이 사고를 놓고 미국 사회는 지루할 정도로 근원적인 문제점을 짚었고 더 오랜 시간을 들여 대책을 만들었다. 사고가 나도 기름 유출이 최소화되게 유조선을 이중벽으로 만들도록 한 규제나 사고 책임을 선장과 선원은 물론이고 유조선사와 관련 주체에게 엄격하게 지우는 법 규정 등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우리는 사고를 접할 때마다 “이번 사고는 전에 일어났던 사고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사고는 없다. 표면적인 몇 가지 문제만 밝혀내 조치를 취하는 한 유사 사고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사고는 제도라는 하드웨어적 측면과 안전문화라는 소프트웨어 측면 모두의 문제로 발생한다. 다시 말하지만 사고는 수많은 잘못의 결과이다. 그래서 세월호처럼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면 소수의 당사자만이 아닌 수많은 간접 관계자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고 원인 조사가 종합적인 과정이어야 하고, 흥분된 상태에서 즉흥적인 단기 결론으로 도출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사고 결과에 대해 광범위하고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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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절제와 냉정이 절실했다. 현장에 전문가와 정치인, 가족, 그 외 목소리 큰 사람들이 한데 엉키다 보니 구조와 수색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수색 작업을 마치 구조 작업을 하듯 급하게 하던 민간 잠수부의 사망도 그런 현장의 격앙된 감정에서 비롯됐다. 잠수부의 사망은 ‘희생’이 아닌 또 다른 안전사고였다. 대규모 안전사고가 난 곳에서 또다시 안전사고를 내고도 우리는 여전히 감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수백 명이 아닌 한 명의 목숨이라 그 심각성이 작아 보이는가.
냉철함을 유지해야 할 또 다른 주체는 매스컴이다. 예를 들면 우리 언론은 사건 발생 초기에 세월호의 에어포켓(침몰한 선박 내부에 공기가 남아 있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피해자 가족들에게 그릇된 희망을 전파했다. 언론의 균형 잃은 보도 행태는 사고 수습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초기에 혼란을 부채질하지 말고 6개월, 1년 후에 사고를 추적하는 것이 공익을 위한 언론의 역할일 것이다.
우리는 더욱 냉정해져야 한다. 몇 가지 방안을 취한다고 해서 갑자기 우리 주변이 안전해질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처럼 슬픈 사고의 가장 밑바닥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깔려 있다. 특히 경제적 이해관계는 항상 중요한 이유 중에 선두에 있다. 우리는 안전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에너지 업계의 안전 분야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우리의 ‘빨리빨리’ ‘싸게 싸게’ 문화를 절감한다. 이런 인식의 문제부터 집요할 정도로 파고들어 사고에서 교훈을 얻어야 점진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단번에 안전을 성취할 수 있는 묘안(Silver Bullet)은 없다.
김연종 유앤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