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밭’
성찬경(1930∼2013)
가만히 응시하니
모든 돌이 보석이었다.
모래알도 모두가 보석이었다.
반쯤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있었지만
빛깔도 미묘했고
그 형태도 하나하나가 완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보석들이었다.
이러한 보석이
발아래 무수히 깔려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하늘의 성좌를 축소해 놓은 듯
일대 장관이었다.
또 가만히 응시하니
그 무수한 보석들은
서로 빛으로
사방팔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빛은 생명의 빛이었다.
이러한 돌밭을 나는 걷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의 밭이었다.
홀연 보석밭으로 변한 돌밭을 걸으면서
원래 이것이 보석밭인데
우리가 돌밭으로 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것 모두가 빛을 발하는
영원한 생명의 밭이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이다.
구사마 야요이의 대규모 설치 작품.
반세기 넘게 활동하면서 그는 평단과 대중이 두루 공감하는 경이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두려움 없이 맞섰던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성찬경 시인의 ‘보석밭’이 떠올랐다. 생전에 집 마당에 버려진 고물을 모아놓고 ‘물질 고아원’이라고 이름 붙여 쓸모와 쓸모없음을 차별하지 않았듯이 시인의 밝은 눈은 돌밭과 보석밭도 구분을 두지 않는다. ‘원래 이것이 보석밭인데/우리가 돌밭으로 볼 뿐이 아닌가’란 구절이 매서운 시련을 버틸 수 있는 용기를 깨우쳐 준다.
인생이 시어빠진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말이 있다. 큰 우환이 닥친 요즘은 까마득한 절벽 위를 두 눈 감고 걸어가는 것만 같다. 사는 게 참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대로 삶의 공포 앞에 무릎 꿇거나 물러설 순 없다. 구사마 씨의 말, “살아내야 한다”를 생각해본다. 사는 것이야 생명 가진 뭇 동식물이 하는 일이고, 살아냄이야말로 인간의 일인가. 하루하루 두서없고 마음이 우왕좌왕 중심을 잃을 때마다 되새기는 금언이 있다. ‘내가 바라는 것만큼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