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스타건축가 구마 겐고 자서전 ◇나, 건축가 구마 겐고/구마 겐고 지음·민경욱 옮김/344쪽·2만 원·안그라픽스
오카다 준야 제공
일본 건축가이자 도쿄대 교수인 저자(60·사진)는 세계 곳곳에 벌여둔 설계 작업을 위해 ‘세계일주 티켓’이라는 특별 할인 항공권을 이용한다. 일반 요금에 비해 훨씬 싼 이 티켓 일정에 맞춰 출장 계획을 짠 뒤 지구 위를 빙빙 도는 것이 일상이다.
구마 교수의 이 자서전을 보면 일명 스타키텍트(star architect)라 불리는 스타 건축가들의 삶은 화려하기보다 고달파 보인다. 세계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며 “‘설계경기’에 참여하는 경주마 같은 신세”라는 말이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저자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한 중국 문화에 대해 “중국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건물을) 베끼고는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도 인정을 받았군요’라고 말한다”고 꼬집은 뒤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냉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중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썼다.
북미나 유럽에 워낙 신축 수요가 없다 보니 스타키텍트들에게 한국은 “앞으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한국 클라이언트의 자신감과 높은 뜻을 보고 있으면 ‘아 나는 일본이란 촌에 사는 놈이구나’ 하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일본은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다. 그런데도 구마 교수는 일본의 경우 위험을 회피하는 ‘샐러리맨 문화’ 때문에 역사에 남을 건축이 나오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공교롭게도 올해의 프리츠커상을 받은 반 시게루도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샐러리맨 경영자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며 비슷한 말을 했었다.
2002년 중국 베이징 교외에 지은 대나무집. 아사카와 사토시 제공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