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다음 이야기/신동준 지음/480쪽(1권), 488쪽(2권)/각 1만5000원·을유문화사
중국 청나라 말기 화가 전혜안(1833∼1911)이 그린 ‘죽림칠현’.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넘어가던 시기에 정치를 멀리 하고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인 완적 혜강 산도 향수 유영 완함 왕융을 일컫는다. 이들은 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을 신봉해 유가적 질서나 형식적 예를 조소했는데, 훗날 정치적 압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표현했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을유문화사 제공
삼국지는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이다. 여기서 삼국지라면 연의(演義), 소설을 일컫는다. 유비 관우 장비 조운 조조 제갈량…. 이름만 거론해도 짜릿하다. 다만 많이 독파해도 깨치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솔직히 스무 번 이상 읽었는데 지금도 얄팍하다고 혼이 난다.
한데 ‘삼국지 다음 이야기’의 저자는 이를 두고 혀를 찬다. “소설 삼국지를 아무리 많이 읽을지라도 정사 삼국지를 한 번 정독하느니만 못하다. 정사 삼국지를 여러 번 정독할지라도 남북조 시대의 역사를 곁들여 한 번 보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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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얘기다. 세계사 시간에 ‘위진남북조, 위진남북조’를 기계처럼 외우기만 했다. 위가 조조 집안이 세운 나라라는 것도 까먹곤 했다. 세 나라가 피 터지게 싸웠는데 천하통일은 사마의 가문이 했다더라. 아, 역사 참 묘하다. 뇌 회로도 보통 거기서 멈췄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이는 중화사상이 짙게 깔린 선입견 때문이다. 남북조시대는 흉노나 선비 같은 북방민족이 활개를 쳤던 시기다. 한족 중심 역사관에선 배알이 꼴리기도 했겠지. 하지만 우리야 그럴 필요가 있나. 오히려 선비족은 같은 혈통의 친척 아닌가. 책 부제에 등장하는 ‘오랑캐’는 다름 아닌 우리를 부르는 호칭이기도 했다.
그렇다. 저자 말마따나 “중국은 사계절의 순환처럼 분열과 통일의 시대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위진남북조 시대는 앞선 춘추전국시대와 상당히 닮았다. 위진시대가 춘추라면, 남북조시대는 전국이랄까. 사상적으로도 유교와 불교 도교가 치열히 경쟁하면서도 상대의 장점을 받아들여 자양분으로 삼았다. 오랑캐는 결코 야만의 문화가 아니었다. “강건한 상무정신을 토대로 뛰어난 정치 군사 문화를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 이질적인 남북조 문화를 하나로 녹이려는 각 방면의 노력이 바로 ‘호한융합(胡漢融合·북방민족과 한족의 조화)’에 기초한 수·당의 통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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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으로 이뤄진 만만찮은 분량이나 ‘삼국지 다음 이야기’는 읽는 기쁨이 쏠쏠하다. 줄곧 간웅으로 평가받았던 위나라 조조를 향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애정에서 시작해 수문제(隋 文帝)가 진(陳)을 멸망시킬 때까지 쉴 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간다. 문장도 간결하고 적확하다. 서사의 흐름이 단 한 차례도 늘어지지 않는 게 뭣보다 강점이다.
다만 이는 읽는 이에 따라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어쩔 땐 너무 획획 지나간다. 두세 쪽 읽는데 전투가 대여섯 번 벌어져 ‘잠깐, 누구랑 싸워 이겼다는 거야’ 하고 헷갈렸다.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 스타일과 딱 대척점에 서 있다. 사실 전달과 별개로, ‘로마인 이야기’는 중언부언 반복하는 대목이 잦다. 하지만 그만큼 친절하게 설명한다. 반면 이 책은 위 이후 ‘진남북조’ 300년가량을 2권에 모아서일까. 너무 짜서 물기가 마른 행주를 쥔 기분이다.
저자는 말한다. 중국사는 오랑캐 빼면 성립되지 않는다고. 실제로 그렇다. 따지고 보면, 위진남북조는 물론이고 요, 금, 원, 청도 북방민족이 세운 국가였다. 특히 이후 수와 당으로 이어지는 통일국가 시대는 ‘5호16국’ 시절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한족 중심에서 벗어나 새롭게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구나 우리 학자의 글로 만나는 행운을 놓치지 마시길. 중국, 참 ‘재밌는’ 나라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