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업체 입사 2년만에 이사돼“비전없다”… 사장 설득해 안경사업
김한국 젠틀몬스터 대표가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25길에 있는 쇼룸에서 실험적으로 만든 안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25길에 있는 젠틀몬스터 쇼룸에서 김한국 젠틀몬스터 대표(34)를 만났다. 김 대표는 “전지현 씨의 코디네이터에게 제품을 보내긴 했지만 진짜로 쓸 줄은 몰랐다”며 “돈 한 푼 안 들이고 브랜드를 널리 알리게 된 건 행운”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3년 전만 해도 작은 영어교육업체 직원이었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입사한 금융회사에서 “재미없다”며 1년 만에 뛰쳐나와 들어간 곳이었다. 열성적이었던 그는 대리로 입사해 2년 만에 이사가 됐다.
그렇게 탄생한 젠틀몬스터는 창립 첫해 9개월 동안의 매출이 1억2000만 원에 불과했다. 직원 5명에게 줄 월급이 없었다. 색다른 마케팅을 시도하면 뜰 것이라 믿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답은 디자인에 있었다. 한번은 같이 작업하던 한 문신 예술가에게 “우리 안경을 연예인들한테 홍보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솔직히 너희 안경 안 예뻐서 써보라고 권유를 못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충격을 받은 김 대표는 마케팅이 아닌 제품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전공한 적도 없는 디자인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2011년 말에 탄생한 ‘트램씨2’ 안경테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잡지 등을 통해 안경을 접한 고객들이 안경점에서 젠틀몬스터 안경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콧대 높던 대형 안경점들은 젠틀몬스터에 납품을 부탁해 왔다. 김 대표는 “사업 시작 때 안경테 업체를 쥐락펴락하는 대형 안경점의 독점적 유통구조는 큰 벽과 같았다”며 “업계의 ‘갑을(甲乙) 관계’를 바꿨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연예인들도 이 회사 안경을 찾았다. 김 대표는 여러 디자이너와 함께 특별한 디자인의 안경을 만들며 브랜드를 키워 나갔다. 제조업체가 매장을 왜 내느냐는 안경점들의 견제를 무릅쓰고 쇼룸을 끊임없이 새롭게 단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100억 원 가까이 됐고 올해 매출은 180억 원이 목표다. 수십 년 안경사업을 해온 국내 주요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자기 브랜드를 갖는 데 성공한 보기 드문 국내 업체란 평가가 나왔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