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정책사회부장
디자인을 전공한 한 명예교수가 최근 ‘퇴적공간’이라는 책을 냈다. 지난해 여름 한 미술 관련 모임에서 만났던 분이다. 그때는 우리 생활 속의 디자인에 관해 얘기했는데. 그는 대학을 퇴직한 뒤 자신이 노인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탑골공원을 찾았다고 한다. 그곳에서의 체험과 느낌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탑골공원과 주변 일대의 노인들을 ‘시대가 남기고 간 잉여인간의 집합’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탑골공원을 퇴적공간이라 부른 것이다. 잉여와 퇴적이라니, 서글프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동안, 탑골공원이 머리에 맴돌았다.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 우리 시대는 이곳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또 후대는 이곳을 어떻게 기억해 줄 것인가.
그런데도 지금 우리 시대는 탑골공원을 노인의 공간 정도로만 인식하려 한다. 그 같은 시각은 ‘탑골공원은 배제와 고립의 공간’이란 인식으로 이어진다. ‘수상한 그녀’에 나오는 젊은이들이 그렇고, ‘퇴적공간’에서 부닥치는 현실이 그렇다. 그러한 사회적 인식 속에서 탑골공원 노인들은 고립에 빠져든다. 아울러 탑골공원이란 공간 역시 소외되어 간다. 이런 현상은 탑골공원의 본질에 대한 기억의 왜곡이자 단절이다. 탑골공원을 찾는 노년세대에 대한 모독이다.
그 기억을 건강하게 되살려야 한다. 탑골공원에 모이는 노인들의 지난했던 삶을 불러내야 한다. ‘수상한 그녀’의 주인공 할머니가 젊은 생으로 다시 태어나듯, 그 기억을 새로운 꿈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탑골공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탑골공원을 노인들이 모여드는 곳 정도로 그냥 내버려 두어선 안 된다. 그럴수록 그곳은 배제와 고립의 공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섞여야 한다. 탑골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계층과 연령대가 섞여야 한다. 바둑 장기 두는 노인, ‘박카스’ 파는 아줌마만 드나드는 곳이 아니라 중장년층도 찾아가야 하고 젊은이들도 많이 드나들어야 한다. 그곳에서 서로 어울리고 떠들어야 한다. 탑골공원이 좀 소란스러워져도 좋다. 모두 어울릴 수 있는 역동적인 탑골공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탑골공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노인 세대의 지난한 삶을 기억하는 것. 그건 탑골공원과 노인 세대에 대한 예우다. 먼 훗날, 우리 후대는 ‘2014년 탑골공원’을 과연 어떻게 기억해 줄 것인가. 엄정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 답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