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경면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이란 식물원의 안내 멘트 중 한 대목이다. 정원 가이드는 관람객들에게 분재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이 말을 꺼낸다. 왜 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는 것일까.
▷식물은 화분 속에서 뿌리 생장을 계속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화분 속이 뿌리로 꽉 찬다. 화분과 닿는 부분의 뿌리는 갈색으로 변하며 굳어지는데, 이런 뿌리는 물과 양분을 잘 빨아들이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분갈이를 할 때 굳은 뿌리를 낫이나 가위로 깨끗이 잘라낸다. 그렇지 않으면 식물이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언뜻 보면 잔인해 보이는 뿌리 잘라내기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옮겨 심은 식물이 새 뿌리를 내리면서 ‘회춘(回春)’을 하고 수명까지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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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식물은 자리를 옮긴 후 ‘몸살’을 앓는다. 미세한 뿌리의 조직이 이식 과정에서 상할 수 있고, 뿌리에서 흡수하는 물보다 잎으로 배출되는 수분이 더 많은 탓이다. 숙련된 정원사는 분갈이할 식물의 뿌리를 잘라내면서 가지도 쳐준다. 때론 나무 스스로 잎을 떨어뜨린다. 가지와 잎은 사람으로 치면 ‘기득권’ 또는 ‘잘나가던 시절의 기억’이다. 자리를 옮긴 사람은 기득권을 버리고 새 자리가 주는 스트레스를 참고 견뎌야 한다. 그래야 새 뿌리와 가지가 돋아나 또 다른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다. 새로운 출발이 많은 연말연시에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다.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