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환란때 사기극 벌여 15년형, 의사 매수해 형집행정지… 中 밀항中서도 사기치다 7년째 복역중… 정부, 시효 연장위해 中에 인도요청일주일 국내 수감뒤 돌려보내기로… 中서 형기 채우면 국내서 또 옥살이
중국에서 국내 사법당국으로 넘겨진 변인호 씨가 20일 오후 2시경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변씨는 일주일 후 중국으로 송환돼 남은 형기를 복역한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구치소에 있어야 할 변 씨가 어떻게 중국행 배에 올라탔을까. 이는 의사와 사건 수임 변호사, 교정공무원, 뇌파 의료기사 등 다양한 분야의 ‘조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 씨의 항소심 변호인 하모 씨는 변 씨를 빼돌리기 위해 의사부터 접촉했다. 일식집에서 “소견서를 유리하게 써 줘 외래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3000만 원을 건넸다. 변호사가 속한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은 뇌파검사를 담당한 의료기사에게도 “결과가 나쁘게 나오게 해 달라”며 서울 강남의 단란주점에서 700만 원을 줬다. 변 씨 담당 교정공무원을 서울구치소 내 관사 앞에서 만나 1000만 원을 주고 자신과 미리 짜 둔 해당 의사가 속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하는 등 전방위로 로비를 벌였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변 씨는 1998년 12월,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서울고법에서 ‘고혈압과 혈뇨 배출이 심하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낸 뒤 병원 입원까지는 성공했지만 사기 피해자들이 고용해 문 앞에 하루 종일 세워 둔 사설 경호원이 걸림돌이었다. 이번에는 변 씨 누나가 나섰다. 경호원에게 접근해 “내가 해외에 부동산이 많은데 동생을 빼 주면 외국에서 편하게 살게 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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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변 씨가 중국 형기를 다 채운 뒤 국내에 송환되면 국내에서 선고받은 15년형의 집행 시효가 끝나 버린다는 점이다. 형 집행 시효는 확정 판결을 받은 날짜로부터 계산된다. 현행 형법상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았을 경우 형 집행 시효는 15년인데 이 시효는 해외 도피 기간 중에도 계속 진행된다. 변 씨의 경우 1999년 3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15년이 되는 내년 3월 2일 이전에 국내에서 형을 일부라도 집행하지 못하면 전체 형 집행이 면제돼 버린다.
한중 양국을 무대로 한 금융 사기꾼의 유례없는 동시적인 형 집행 때문에 ‘한국에서 형을 살게 해야 하니 잠깐이라도 보내 달라’는 우리 정부와 ‘중국에서 형 집행을 마쳐야 보내 줄 수 있다’는 중국 측 입장이 오래 맞서 왔다. 중국 정부는 “수감 중인 범죄자를 다른 나라로 잠시 보낸다는 것은 전례가 없다”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형 집행 시효를 둔다는 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난색을 표하며 인도를 미뤄 왔다.
결국 한중 당국은 수년간의 협의 끝에 ‘절충안’을 마련했다. 변 씨를 단 일주일만 귀국시켜 형을 잠깐이라도 살게 하자는 것. 중국 도피 길에 오른 지 약 14년 반 만인 20일 변 씨는 인천공항을 통해 압송돼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사전 협의에 따라 일주일 뒤 중국으로 다시 송환돼 2018년 4월까지 남은 형기를 복역한다. 그리고 다시 국내로 송환돼 복역하지 않았던 15년형(남은 형기 13년 11개월)을 살 예정이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