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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어린이 ‘꿈의 스파이더맨 놀이’

입력 | 2013-12-19 03:00:00

6세 양희서군 ‘스파이더 보이’ 변신




“뉴스 속보를 전합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줄 산타클로스를 악당들이 잡아갔습니다. 스파이더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서 등장해 구해주세요.”

18일 오후 2시. 대전 서구 둔산동 갤러리아백화점 대전타임월드점 1층에 마련된 특설무대 대형화면에서 긴급 뉴스가 흘러나왔다.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던 무대 근처 쇼핑객들 앞에는 방망이를 손에 든 악당들이 나타났다. 만화 ‘스파이더맨’ 속 악당인 고블린과 죄수 복장을 한 그의 동료들은 “산타를 인질로 잡고 있다”며 쇼핑객들을 위협했다.

때마침 등장한 스파이더맨과 함께 이들을 제압한 ‘영웅’은 양희서 군(충남 아산시 실옥동·사진). 올해 6세인 양 군은 “함께 악당을 무찌르자”는 스파이더맨의 즉석 제안에 처음엔 살짝 겁을 먹은 듯했지만 이내 용기를 내고 고개를 끄덕여 큰 박수를 받았다. 곧바로 ‘스파이더 보이’ 옷으로 갈아입은 양 군은 거미줄 스프레이총을 쏘며 약 50분간 추격전을 벌인 끝에 악당들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이 깜짝 이벤트는 갤러리아백화점이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자선단체인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과 함께 기획한 것이다. 양 군은 지난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현재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양 군은 3개월에 한 번씩 진행하는 척추검사와 계속되는 통원치료로 힘든 상황에서도 아빠와 스파이더맨 놀이를 할 때 가장 많이 웃고 즐거워한다. 그런 아들을 위해 어머니 이미현 씨(40)는 올해 10월 재단 측에 소원과 사연을 보냈다.

갤러리아와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배트 키드(Batkid·어린이 배트맨)’ 이벤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비슷한 성격의 행사를 기획했다. 미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배트맨이 되는 게 꿈인 백혈병 환자 마일스 스콧 군(5)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경찰과 언론사, 시민들의 협조를 얻어 대규모 이벤트를 열었다.

‘스파이더 보이’가 탄생한 갤러리아백화점 이벤트도 여러 도움의 손길 덕에 열릴 수 있었다.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은 이동준 씨는 특수효과까지 활용하며 현장을 지휘했다. 서울액션스쿨의 배우들은 현란한 액션과 함께 악당 연기를 펼쳤다. 이들은 모두 무료로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했다. 양 군은 현장을 지켜본 백화점 직원 및 쇼핑객들로부터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어머니 이 씨는 “엄마를 지켜주기 위해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착한 아들이 어서 완치가 돼 씩씩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전=권기범 기자 ka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