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가산디지털단지
정보기술(IT) 기업과 패션아웃렛 중심지로 변한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의 모습. 이곳은 1960∼80년대 수출을 주도했던 구로공단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당시 노동자들의 고된 삶과 공단 전경은 여러 영화와 소설의 소재로 사용됐다. 동아일보DB
이곳의 50년 전 옛 이름은 ‘한국수출산업공단 구로동 공업단지(구로공단)’이다. 구로공단은 1964년 첫 삽을 뜬 이후 약 10년이 지난 1973년 총 3개의 단지로 규모가 커졌다. 흰 쌀밥 한 그릇을 배불리 먹기도 어렵던 시절 구로공단에 들어선 섬유, 봉제, 가발 공장으로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상경한 소녀들은 이름 대신 ‘공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밤낮으로 허리가 끊어져라 일하며 초기 수출 산업을 이끌었다.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방… 왜 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방을 생각하면 한없이 외졌다는 생각, 외로운 곳에, 우리들, 거기서 외따로이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인지’(신경숙의 ‘외딴방’)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정부가 구로공단의 용도를 첨단IT 서비스 단지로 바꾸며 높은 빌딩과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산업 변화에 따라 화려한 빌딩이 들어섰지만 빌딩 구석구석에는 옛 구로공단의 흔적을 간직한 장소들이 곳곳에 남아 당시 고단한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패션 아웃렛 단지는 과거 봉제공장이 있던 곳. 마리오아울렛이 자리한 사거리에는 과거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구로봉제협동조합 같은 봉제공장들이 있었다. 지난해 문을 연 마리오아울렛 3관에는 구로공단을 기념하는 굴뚝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구로공단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 서울시와 구로구는 과거 공단에서 일하거나 거주했던 사람들을 ‘동네 해설사’로 발굴해 과거의 흔적을 찾는 투어프로그램 ‘추억과 희망의 구로공단 여행’을 열기도 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