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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쉬워진 햄릿… 너무 내려놓아 당황스러워

입력 | 2013-12-12 03:00:00

연극 ‘햄릿’ ★★☆




왕비 거트루드를 힐난하는 햄릿. 무대와 의상의 짜임새는 안정적이다. 극 구성의 디테일에 대한 아쉬움이 그래서 더 크게 느껴진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햄릿’은 글 쓰는 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것을 부끄럽고 두렵게 만드는 텍스트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듯 느껴진다. 흐트러진 듯 정리돼 있고, 거듭 멈칫하는 듯하면서 거침없이 흘러간다.

일정 수준 교육을 받은 지구인 대부분의 뇌리에 햄릿은 ‘망설이는 인간형’으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작품 속 햄릿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412년 동안 수많은 연출가와 평론가가 햄릿의 모호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햄릿’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 유일하게 현저히 서로 다른 3개의 판본이 존재한다. 후대 연출가들이 잇따라 새로운 해석에 도전한 이유다.

4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햄릿’의 오경택 연출은 “원작 대사 50%를 덜어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만큼의 새로움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다른 말과 이야기를 만들어내 덜어낸 부분에 채워 넣은 것이 아니다. 원래의 흐름을 따르면서 지금의 관객에게 익숙한 언어로 치환한 흔적이 뚜렷하다.

긴 대화 사이에 파묻혀 태연히 던져지지만 잠시 멈춰 되씹고 싶게 만드는 시적 대사들이 평이한 일상어로 정리됐다. “가슴아 터져버려라. 입을 닫아야 하니까”를 “입을 닫고 있어야 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다”로 바꾼 식이다.

고전을 해석하고 연출하는 데 정답이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의구심이 남는다. 대사를 듣기 수월하게 바꿨지만 공연 시간은 2시간 45분(인터미션 포함)으로 만만찮게 길다. 굴곡 없는 언어가 길게 이어지면서 나타나는 밋밋함을 가리기 위해 튀는 음악과 유머를 삽입했다. 클로디어스 왕과 신하들은 대관식 파티에서 테크노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추고, 햄릿을 감시하는 길덴스턴(구도균)은 몇 번이나 푸짐한 볼살을 흔들어 웃음을 유도한다.

관객은 웃는다. 그러나 아무래도 애석하다. 정보석은 분장 옅은 얼굴 그대로 속모를 매력남 햄릿의 현신이다. 남명렬은 악역 클로디어스의 속사정을 이해해보고 싶게 만들 정도의 열연을 보여준다. 햄릿의 신경쇠약과 자아도취로 인한 위선을 그려냈다면 설득력 있는 조합이었을 것이다. 배우들을 믿고, 조금 ‘덜’ 친절하게 갔으면 어땠을까.

예정된 죽음 앞의 칼싸움이 올림픽 펜싱경기 중계처럼 보일 때, 선왕(先王)의 원혼이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산 사람에게 빙의할 때, 웃기에 앞서 당황스럽다. ‘햄릿’ 무대를 처음 보는 관객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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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희 김학철 박완규 전경수 정재진 지춘성 이지수 김병희 신기원 배소현 출연. 29일까지. 2만∼5만 원. 1644-2003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