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스푹스를 보면 영국의 어두운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부의 부정부패와 미국과의 갈등, 알카에다 등의 테러위협, 인종 문제 등 어떻게 이런 드라마가 공영방송 전파를 탔는지 의아할 정도다. 게다가 드라마 속 요원들의 활동은 대부분 불법이다. 무제한으로 도청을 하고 불법 혐의로 수감된 요원을 빼돌려 해외로 도피시킨다. 필요하면 암살도 한다. MI5를 관할했던 전직 내무부 장관에게서 스파이 혐의가 나오자 MI5 간부가 그를 직접 살해하는 내용도 있다.
이상한 건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영국에 대한 걱정보다는 조국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MI5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요원들의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인다는 점이다. 최근 만난 국내의 한 전직 군 정보기관 장성은 “MI5, MI6에 대한 영국인들의 신뢰는 대단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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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절 국정원은 국내 정치에 탈법적으로 개입해 민주 인사들을 탄압했고 심지어는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살해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댓글 공작’도 잘못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남북이 대치 중이고 주변 강대국에 포위되어 있는 한국의 안보 현실에서 국정원이 맡은 역할은 막중하다. 국정원 활동의 극히 일부인 ‘댓글’로 조직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나 이스라엘의 모사드, 러시아의 연방보안국(FSB), 일본의 내각 정보조사실, 중국의 정보조직, 북한의 정찰총국이나 국가안전보위부 등 세계의 정보기관들은 각자 국익을 위해 소리 없이 치열한 첩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장성택 실각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4일, 국내 군 정보전문가로 최근 퇴역한 예비역 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말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군 정보기관의 주요 해외활동 거점과 인적 네트워크는 다 무너졌다. 미국의 정보지원이 없어지면 우리 군의 북한에 대한 정보는 거의 깜깜한 수준이다. 북한 핵을 다룰 수 있는 능력도 미약하다. 우리에겐 첩보위성도 없지 않은가. 우리 정보기관이 북한 내부 동향과 안보위협을 과연 얼마나 상세히 알고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기자는 몇 달 전 미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했던 한인 교포를 만난 적이 있다. 스푹스를 보고 난 뒤 그가 그때 해준 충고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국가정보가 강해지려면 첫째 뛰어난 인재, 둘째 ‘국가를 지킨다’는 긍지, 셋째 돈 과학기술 등 물적 자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는 정보기관이 더 강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와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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