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27년만에 정규앨범 6일 출시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있다. 올해 4월 서울 서교동의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들국화. 왼쪽부터 최성원, 고 주찬권, 전인권. 들국화컴퍼니 제공
그해 여름, ‘1979-1987 추억들국화’(전인권·허성욱)가 나왔지만 85년과 86년 가을 세상을 흔든 그 이름은 지고 없었다. 암울한 시대를 뚫고 언더그라운드에서 튀어나온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제발’은 처음 듣는 아름다움으로 당대의 청춘을 포박했지만 정작 들국화는 87년 요절한 것이다.
들국화가 6일 내는 앨범 ‘들국화’ 표지. 들국화컴퍼니 제공
2013년 ‘들국화’는 전성기에 분실된 ‘들국화 III’를 발굴해 보수한 것 같다. 소박한 편곡, 투박한 연주 위에 어김없이 유려한 멜로디와 가사가 얹힌다. 두 장의 CD로 돼 있다. 첫 장에 신곡 7곡과 라이브 실황 두 곡을 담았다. 둘째 장에선 옛 히트곡 12개가 새 옷을 입었다. ‘행진’ ‘제발’뿐 아니라 ‘사랑한 후에’ ‘제주도의 푸른 밤’까지 새로 편곡·연주됐다. 신곡 중엔 단박에 ‘록의 성가(聖歌)’가 되기보다 오래 불릴 노래가 많다.
고즈넉한 플루겔혼 전주가 여는 첫 곡 ‘걷고, 걷고’가 답이 된다. 거칠게 얘기하면 이 곡은 ‘행진’의 느린 답가다. 근음(화성의 가장 아래를 맡는 음)이 반음씩 상승하는 화성 위로 ‘걷고 걷고 또 걷는다’고 노래하는 전인권의 목소리는 목이 멘 건지 술에 취한 건지 분간하기 힘든, 80년대 그 막걸리 소리다. 그는 ‘행진’의 절반쯤 되는 빠르기로 ‘꽃이 피고 또 지고/산위로 돌멩이길 지나/아픔은 다시 잊혀지겠지’를 국화 핀 들판을 소요하듯 노래한다.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장송곡 같은 ‘행진’이다. ‘캘리포니아 드리밍’도 떠오르는 음울한 악곡은 중간 템포의 셔플 리듬에 얹혀 나선계단처럼 단조와 장조로 맴도는데 곡 말미에 오지 오스본처럼 절규하는 전인권의 외침은 잔상이 길다.
신곡 중 세 곡은 리메이크다. 조동진의 ‘겨울비’(1979년)와 프랑스 가수 미셸 폴나레프의 ‘사 나리브 코조트르’에 전인권이 가사를 붙인 ‘다시 이제부터’, 그리고 김민기의 ‘친구’다.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을 부르며 전인권의 목소리는 진혼으로 비틀댄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받치는 주찬권의 코러스도 들린다.
‘가슴 아픈 너의 말/그건 들국화로 필래였어… 친구여 눈 들어 나를 봐… 세상의 모든 어린 들국화를 위해/들국화로 필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