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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오승환에게 없고 임창용에겐 있는 한가지… 망각 능력

입력 | 2013-11-16 03:00:00

[‘멘붕’ 이길 비법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최고 마무리 투수 오승환(31·삼성)은 요즘 상한가를 치고 있다. 그를 데려가기 위해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10여 개 팀이 경쟁 중이다. 빠른 공에 묵직한 구위, 마운드에서의 냉정함, 연투 능력….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로서 모든 것을 갖춘 완성형 선수다. 그런 오승환이 부러워하는 투수가 있다. 37세의 나이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임창용이다.

한때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둘은 친형제 이상으로 친하다. 시즌 중에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비시즌에는 아예 한 달 정도 함께 지내며 운동도 하고 여행도 간다.

한국 프로야구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마무리로 뛰었던 임창용에게는 오승환이 부러워하는 특별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망각’ 능력이다. 축구의 골키퍼처럼 야구에서 마무리의 실패는 곧바로 동점 허용이나 패전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인 이상 블론세이브(마무리 기회에 등판해 세이브에 실패하는 것)를 피할 수는 없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게 안 좋은 기억을 빨리 잊는 것이다.

오승환은 팀 승리를 날린 날이면 분하고 억울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3시간 동안 이긴 경기를 10분 만에 내가 망쳤다는 생각에 팀과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누가 원망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자신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불펜 투수들의 마음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임창용은 특별한 선수다. 중요한 경기를 지키지 못했을 때조차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 하며 툭툭 털어버린다. 오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임창용은 보통 선수라면 ‘멘털(정신력) 붕괴’에 빠질 수 있는 아픔을 여러 차례 겪었다.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연장 10회 스즈키 이치로와 정면 승부를 하다가 역전 결승타를 얻어맞은 게 대표적이다. 당시 정면 승부가 벤치 사인이었느냐, 아니면 임창용의 공명심이었느냐를 두고 엄청난 논란이 일었다. 그렇지만 임창용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해 일본 프로야구에서 5승 4패 28세이브를 따냈다. 임창용은 “지나간 일을 어쩌겠는가. 원래 낙천적인 성격으로 나쁜 기억은 잘 잊는 편”이라고 말한다.

‘망각’과 ‘무심’에 관한 한 두산의 불펜 투수 홍상삼(23)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하다. 홍상삼은 올해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한 이닝에 3개의 폭투를 범했다. 특히 피치아웃(타자를 거르기 위해 포수가 일어서서 공을 받는 것) 상황에서 포수 머리 위로 하이볼을 던진 것은 해외 토픽에 나올 만한 해프닝이었다. 그랬던 홍상삼이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타자들이 손도 대지 못할 무시무시한 공을 뿌렸다. 홍상삼은 6월 7, 8일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이틀 연속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그는 “지난 일은 잊고 원래 하던 대로만 하자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른다”고 했다. 여기에 그가 덧붙인 한마디는 과연 ‘멘털의 고수’다웠다. “저는 원래 기억력도 나빠요.”

멘털 스포츠라는 골프에서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진출한 ‘맏형’ 최경주(43·SK텔레콤)의 긍정 마인드가 단연 돋보인다. 미국 진출 초창기 최경주는 백인 선수들이 주류인 PGA 투어에서 적지 않은 텃세에 시달렸다. 미국 선수들은 대놓고 최경주의 흉을 봤다. 보다 못한 재미동포 나상욱(30·타이틀리스트)이 “선배님, 미국 선수들이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자 최경주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야야, 놔둬라.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디 남들이 머라 하든 뭔 상관이냐.”

최경주의 긍정은 동료 골퍼들은 물론이고 스스로에게도 힐링의 효과가 있다. 한참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릴 때 그는 “방귀가 잦으면 ×이 나오게 마련이다”라고 했고, 1번홀 보기를 범했을 때면 “첫 홀 보기는 살림 밑천”이라고 했다. 그가 주말 골퍼들에게 주는 조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더블 보기나 트리플 보기 하면 기분 나쁘시죠. PGA 투어에서 8승을 거둔 저는 요즘도 종종 더블 보기를 합니다. 안 좋았던 일에 집착하다 보면 즐거워야 할 나머지 홀도 힘들어집니다. 즐겁고 편하게 쳐야 스코어도 좋아집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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