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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창조에 정답은 없다… 치열함이 있을뿐”

입력 | 2013-11-14 03:00:00

소나무 사진으로 세계적 명성 떨치는 배병우 작가




한국의 대표 사진작가 배병우는 소나무를 자신의 주된 창작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 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소나무 사진은 ‘빛으로 그린 수묵화’라 불린다. 그는 단순 히 소나무라는 소재를 선택해 작품의 대상으로 삼은 게 아니라 소나무의 본질을 이해하고 공부해 스스 로 소나무와 하나가 됐다. 구도자적 치열함이 그의 창조성을 만들어냈다. 배병우 작가 제공

21세기 시대정신이 ‘창조성’이다 보니 ‘창조성의 발현 원리’를 하나의 ‘모델’로 만들어 제시하는 책과 이론서가 범람한다. 그러나 실제 경영 현장에서 이런 방법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경영 의사결정의 본질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정답과 오답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해법 중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선택하거나 기존 해법들을 조합해 자신만의 해결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 ‘효율성의 시대’에서도 ‘공식의 적용’이 통하지 않았는데, ‘창조성’의 시대에 ‘정답’과 ‘불변의 방법론’을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창조성이 무엇이고 어떤 경우에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폐기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대안과 방법을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와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가장 창조적인 집단’인 예술가 집단을 연구해보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 사진작가이자 소나무 사진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배병우를 인터뷰하고 그의 창조활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살펴봤다. DBR 140호(11월 1일자)에 실린 ‘‘창조성’ 원천을 찾아서: 사진작가 배병우 편’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소나무와의 운명적 만남

전남 여수 출신인 배병우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형들과 남해 섬들 사이를 작은 배로 노 저으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크레용과 수채화 물감을 갖게 된 초등학교 시절엔 화구와 함께 섬 사이를 누볐다. 카메라 대신 붓으로 바다를 담은 셈이다.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던 그는 선배의 권유로 사진에 입문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보고 그렸던 ‘해송’은 이후 그가 ‘소나무’를 자신의 작품 소재로 삼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전통 회화에 심취한 배병우는 소나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더 넓혀 나갔다. 한국인의 삶은 결코 소나무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게 배병우의 결론이었다.

창조란 결국 개개인의 사고와 창의력을 통해 조합되고 발현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각 개인이 가진 경험이 창조의 근간이 된다. 배병우 역시 자신의 경험 속에서 창조활동의 대상과 기법을 찾아냈고 발전시켰다. 직접경험과 독서 같은 간접경험 등 다양한 경험이 없이 엉뚱한 생각만으로 창조성이 생겨날 수 없다는 걸 일깨워 준다.

○ 소나무와 하나가 되다

소나무라는 일생일대의 창작 대상을 만난 배병우는 소나무의 모든 면을 이해하기 위해 맹렬히 몰두했다. 전국의 소나무 숲을 다 돌아다녔다. 1984, 85년께 본격적으로 소나무 사진을 찍기 시작한 후 처음 일 년 동안에만 10만 km 정도를 답사했다. 작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소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전문서적, 신문, 잡지 등의 모든 소나무 관련 기사를 스크랩했고 조선시대에 소나무를 그린 회화작품을 모두 찾아봤다. 그렇게 ‘빛으로 그린 수묵화’라고 불리는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이 탄생했다. 그는 한국의 소나무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소나무는 물론이고 다른 수많은 나무들에 대한 연구도 계속해나갔다. 그가 독일의 한 도시를 방문했을 때 현지인이 숲에서 좀 떨어져 홀로 서 있는 고송이 건강이 안 좋은 것 같다며 그 이유를 물었다. 배병우는 너무도 쉽게 “외로워서 그렇다”고 답했다. 실제 그 나무는 이전까지 숲이었던 곳이 개발로 훼손되고 혼자 남자 병이 든 상태였다. 이처럼 이미 자신의 창작 대상인 소나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창작 대상과 ‘합일’의 상태를 이뤘던 것이다.

○ 자기 확신으로 버티다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서양의 연출기법을 흉내 내는 것 일색이었던 1980년대에 배병우는 자신만의 작법으로 소나무를 표현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88년 독일에서 전시를 했는데 그곳 사진작가 협회장도 나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귀국한 배병우는 독일 사진작가 협회장에게 편지를 썼다. ‘소나무에 일생을 걸겠으니 지켜봐 달라’는 얘기를 담았다. 세상의 싸늘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신이 있었다. 사진이란 본래 대상의 본질을 포착해 새로운 차원의 인식을 끌어내는 매체라는 예술적 확신이 그를 버티게 만들었다. 줏대 없이 다른 나라의 유행을 따라가는 건 결코 최고의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신념도 있었다. 결국 자신의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의 관심은 아시아로 향했고 환경과 생태주의에 대한 관심도 그의 작품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 단순히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니라, 충분한 공부를 통해 확신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창조성은 ‘번뜩이는 생각’이 아니라 ‘우직한 확신과 노력’이 만들어내는 성과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는 현재 한국과 외국의 고궁, 바람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자연의 움직임을 담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바람의 경치’, 진짜 ‘풍경’을 담아내겠다는 것이다.

○ 구도자적 치열함이 창조를 낳는다

배병우는 자신의 주된 작품 소재인 소나무를 만났고, 하나가 됐으며, 확신을 갖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는 소나무 사진으로 세계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오른 뒤에도 계속 새로운 소재를 찾으며 다시 ‘창조’의 길로 들어섰다. 사진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너무나 진지하고 우직하고 치열하다. 마치 구도자 같은 인상을 준다. 애주가인 그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오전 4시에 20kg에 이르는 장비를 메고 사진을 찍으러 길을 나선다. 사진을 찍는 건 곧 빛을 다루는 일이고, 자신의 예술 세계를 열기 위해 사진작가는 빛을 가장 잘 이해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빛, 자신의 사진 언어가 가장 잘 구현될 수 있는 시간대에는 어김없이 사진기와 장비를 들고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유행처럼 양산되고 있는 창조성에 관한 자기계발서나 경영경제 서적들은 20세기 산업사회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는 ‘근면성’이 관건이었지만 더이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21세기 창조사회에서는 기발한 상상력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배병우를 비롯한 세계적 예술가들은 모두 우직할 정도로 근면했다. 가장 창조적 기업가라는 스티브 잡스가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일에 몰두한 ‘일 중독자’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배병우의 ‘일 중독’은 그 이상이다. 결국 창조란 우연이나 영감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구도자적 치열함에 의해 발현된다는 교훈을 준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dshi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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