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가족 “소장 꼬인 신생아를 병원선 ‘이상없다’ 돌려보내 사지마비” 담당 의료진 “당시 판단 최선”
○ 의사 가족도 말리는 의료 소송
김 씨는 A병원이 CT를 하고도 중장염전을 제때 진단하지 못해 증세가 악화될 때까지 방치했다며 지난해 1월 법원에 11억16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아이가 평생 노동 능력을 완전히 잃게 됐고 막대한 치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 따라 산정한 금액이다. 하지만 병원 측은 당시 담당 의료진의 판단이 최선이었기 때문에 의료 과실로 볼 수 없어 손해를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의료 과실 소송은 원고가 병원의 진료 및 감정 기록을 확보한 뒤 전문지식을 가진 의료기관을 상대로 복합적인 법리 해석을 거쳐 사고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 측에 큰 부담이다. 소송 기간이 평균 2년 2개월이고, 의료 사건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착수금 등 비용이 최소 600만 원 수준이다. 의료인의 가족이 의료 사고를 당해도 소송을 꺼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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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 시각 반영하는 새로운 시도
서울동부지법 민사13부(부장판사 임동규)는 22일 김 씨와 A병원 간의 재판을 의료인 4명과 일반인 5명이 함께 자문단을 이뤄 재판부에 의견을 전달하는 ‘열린 의료 재판’ 방식으로 진행했다. 의료인과 일반인 사이에 의료 과실의 범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달라 환자들이 의료 소송에 부담을 느낀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의료 소송에 일반인이 자문단으로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인 자문단으로 자원한 20∼50대 남녀 5명은 이날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동 동부지법 15호실에서 열린 최종변론에 참석해 원고와 피고 측 변호인의 공방을 지켜본 뒤 전문의 자문단 4명과의 토의를 거쳐 재판부에 의견을 전달했다. 자문단은 개인별로 각기 다른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인 자문요원 주부 오경실 씨(54·여)와 의료인 자문요원 어환 삼성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60)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자문요원이 사건에 대해 토의하다 보니 과실 여부에 대해 더 복합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과 달리 자문단의 의견을 반드시 판결에 반영할 의무는 없지만 ‘열린 의료 재판’을 개최한 취지를 고려해 일반인 자문단의 의견도 무게 있게 고려할 계획이다. 박 군 재판의 선고 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의료 분쟁을 소송보다 간소하게 처리하려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02-6210-0114)이나 한국소비자원(1372)에 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된다. 조정 기간이 4개월가량으로 소송보다 짧고 수수료 2만∼16만 원 외에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는다. 올해 1∼8월 처리한 조정 건수는 의료분쟁중재원이 980건, 소비자원이 501건이다. 하지만 병원 측이 조정 절차에 응하지 않으면 현재로서는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은 제도적 허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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