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찾기 소설의 완결판 ‘아들의 아버지’ 펴낸 김원일
자전적 소설 ‘아들의 아버지’를 펴낸 소설가 김원일. 그는 “중산층의 도련님으로 태어나 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이던 아버지를 사회주의자로 만든 시대를 보다 세밀하고 균형감 있게 그려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월북한 좌파 지식인 아버지의 생애와 작가 자신의 유년기를 그린 자전소설 ‘아들의 아버지’(문학과지성사)를 낸 소설가 김원일(71)의 얼굴에서는 긴 세월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소설 ‘노을’(1978년) ‘불의 제전’(1980년) ‘미망’(1982년) ‘마당 깊은 집(1991년)’까지 그의 작품에는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아버지’ 또는 ‘부재(不在)하는 아버지’가 일관되게 등장한다. 고희를 넘긴 작가가 그 아버지를 다시 호명한 이유가 뭘까.
작가 자신이 1인칭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자전적 회고 형식의 이번 소설은 ‘빨갱이’ 아버지의 월북 이후 남겨진 가족의 삶을 그린 ‘마당 깊은 집’ 이전 시기를 배경으로, 작가가 태어난 1942년 무렵부터 아버지가 월북하는 6·25전쟁까지를 그린다. 작가와 아버지가 실명(김종표)으로 등장하고 남로당 경남도당 책임지도원, 노동당 서울시당 재정부 부부장을 지낸 아버지의 이력도 그대로 반영했다.
“일제강점기에 많게는 지식인의 6, 7할이 사회주의에 심취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저는 일생을 ‘아버지를 닮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지만, 중산층 집안의 외동아들로 외국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은 지식인이던 아버지 같은 인물을 사회주의자로 만든 시대를 보다 세밀하고 균형감 있게 그려 내고 싶었습니다.”
소설이 주인공의 회고와 역사 르포 형식을 오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가가 옛날 신문은 물론 학술 논문, 검찰청 수사기록까지 훑고 일일이 주석까지 달아 가며 재현한 시대상 덕분에 소설은 작가 개인의 아버지 찾기인 동시에 민족사의 아픔에 대한 탐사라는 짜임새를 갖추게 됐다.
“저라는 사람의 의식은 아직도 6·25를 전후한 시대에 묶여 있습니다. 지금도 당시를 그린 책이나 기사, 수기가 있으면 닥치는 대로 모으게 돼요. 일제강점기 소작농의 궁핍상은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참조했습니다.”
“좌익 사상범, 월북한 남편을 둔 어머니의 수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문학적 기질이나 낭만성을 물려받고도 뜬구름 잡는 삶을 좇지 않았던 것도 따지고 보면 어머니로부터 일종의 시민성이랄까, 생활력 같은 기질을 물려받은 덕분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아버지를 형상화하려 했지만 작가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은 상상의 산물이다. “일제강점기 고향인 경남 진영에서 민중 계몽 연극 대본을 쓰는 대목이나 연합군의 서울 수복 작전 당시 아버지가 인민군복을 입고 나타나는 대목 등은 허구예요. 이 작품을 소설이 아닌 회고록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입니다.”
자기 문학의 뿌리인 동시에 천형(天刑)이었던 아버지를 이번 작품을 통해 내려놓은 작가는 이미 다음 작품 구상에 한창이다. “전쟁 통에 좌익에 가담한 부모를 잃은 산골 소녀의 이야기가 될 겁니다. 내년쯤 세상에 내놓고 싶은데 잡념이 늘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 잘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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