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행진이 흑인대통령 길열어 불평 멈추고 불평등에 함께 맞서자”
신석호 특파원
꼭 50년 전인 1963년 8월 28일에 있었던 워싱턴 대행진과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기념하는 ‘자유의 종을 울려라(Let Freedom Ring)’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수만 명이 몰렸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들고 무려 2시간 반 동안 ‘느린 행진’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뉴욕에서 온 흑인 드웨인 잭슨 씨(50)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제가 태어난 1963년과 지금 흑인들이 처한 구조적인 불평등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신분 상승의 기회는 열려 있지만 제한적이에요. 돈이 없어 좋은 학교를 못 다니고, 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요. 취직을 해도 ‘배경’에서 밀립니다.”
은퇴 공무원에 대한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는 마크 삭스 씨(67)는 “미국 사회의 문제는 인종이 아니라 ‘계급’”이라며 “경제력 차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의 정도가 너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교를 막 졸업한 17세 때 여자친구를 따라 이곳에 와서 킹 목사의 연설을 직접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땐 지금처럼 보안 검색도 없이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링컨기념관까지 행진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평생 평등의 가치를 잃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지금 상황은 좀 심해요.”
분노에 가까운 시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이날 연단에 선 발언자들은 “킹 목사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입을 모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오후 3시 5분, 50년 전 킹 목사가 발언을 시작한 바로 그 시간에 연단에서 30분 가까이 연설했다. 그는 “(50년 전의) 그런 용기를 가지고, 더 좋은 일자리와 정당한 임금, 건강을 지킬 권리를 위해 함께 맞서자”고 강조했다. 그는 50년 전 행진의 결과 흑인인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변화가 왔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날 가장 열정적인 연설을 한 이는 킹 목사의 막내딸이자 킹센터 회장인 버니스 킹이었다. 오후 3시 ‘자유의 종’ 타종식 직전에 등장한 그녀는 “우리가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 이웃들에 대한 탐욕과 이기심, 사랑의 부족 등을 가차 없이 폭로하며 맞서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이날 행사에 공화당 관계자들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초청을 받았지만 불참했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건강 문제로 나오지 못했다. 청중도 민주당 지지자 일색인 가운데 일부는 ‘힐러리 2016’이라는 푯말을 들고 벌써부터 다음 대선 운동을 하기도 했다.
―워싱턴에서 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