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눈동자’ 등 히트작 제조기 김종학 PD 고시텔서 숨진채 발견
빈소 찾은 고현정-박상원씨 23일 숨진 채 발견된 김종학 PD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영정사진 속 김 PD가 환하게 웃고 있다(위). 김 PD의 흥행작인 드라마 ‘모래시계’에 출연했던 배우 고현정 씨(왼쪽)와 박상원 씨가 침통한 표정으로 김 PD의 빈소를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23일 오전 10시 18분경 분당구 야탑동 Y빌딩 고시텔 5층 방에서 김 PD가 침대에 누워 숨져 있는 것을 관리인 이모 씨(59)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 씨는 “방을 비울 시간이 돼서 오전 9시 50분경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어 문을 열어 보니 김 PD가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작은 창문과 출입문 틈은 청색 테이프로 봉해져 있었고 욕실에서 타다 남은 번개탄이 발견됐다.
김 PD가 자필로 쓴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에는 “여보 미안하다. (자녀들에게) 엄마를 잘 보살펴 주기 바란다. 사랑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후배 PD들에게 내가 누가 될까 두렵다. 나 때문에 PD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줄까 걱정된다”는 글도 적혀 있었다.
김 PD는 한국 드라마 역사를 새로 쓴 거장이었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MBC에 입사한 뒤 1981년 ‘수사반장’ 제작에 합류해 드라마 PD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1년 그의 단짝인 송지나 작가와 함께 작업한 MBC ‘여명의 눈동자’는 최고 시청률 70%를 넘기며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PD는 송 작가와 또 한번 손을 잡고 ‘모래시계’(1995년)를 제작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귀가를 빨리 한다고 해서 ‘귀가시계’로 불릴 정도였다. 최고 시청률이 64.7%에 달했다.
1999년 제작사인 김종학프로덕션을 세우고 드라마 ‘고스트’(1999년) ‘대망’(2002년)을 내놓았지만, 전작의 화려한 성적표에는 미치지 못한 채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다. 김 PD는 2007년 한류스타 배용준을 앞세워 제작비 550억 원을 들인 MBC ‘태왕사신기’로 재기를 시도했다.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31.9%를 기록하는 등 성공을 거뒀지만 너무 많은 제작비를 쏟아붓는 바람에 자금난에 시달렸다.
김 PD는 2010년부터 ‘신의’를 기획하며 일본에서 선(先)투자를 받는 등 다시 한번 재기에 나섰다. 이 역시 150억 원에 육박하는 제작비와 톱스타 김희선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으며 지난해 방영됐으나 시청률이 10% 초반대로 평범한 수준에 그쳤다.
‘신의’의 경우 드라마 최초로 3D로 제작하겠다고 나섰다가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포기했다. 하지만 ‘신의’에 들어간 화려한 그래픽과 특수효과 때문에 일반 미니시리즈의 2배가 넘는 제작비가 들었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김 PD가 ‘신의’에서 작품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다가 40억∼50억 원의 적자를 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에는 김 PD에 앞서 연예 제작자들이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1월엔 드라마 ‘아이리스’를 공동 제작한 에이치플러스커뮤니케이션의 조현길 대표, 5월엔 남성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전 소속사 대표 이모 씨, 6월엔 예당엔터테인먼트의 변대윤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성남=남경현 기자·최고야·곽도영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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