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호소’ 부모 따라와 대도시서 구걸생활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에 올라온 아빠와 함께 4년째 다리 아래에서 노숙하는 리하오란 군이 베이징 남역의 패스트푸드 가게 앞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사진 출처 난팡도시보
리 군은 ‘상팡얼다이(上訪二代)’다. 상팡은 중국의 지방민들이 대도시 관청에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상팡얼다이는 상팡하는 부모를 따라온 자녀를 지칭한다. 3일 난팡(南方)도시보는 리 군 부자를 통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상팡얼다이’를 조명했다.
리 군이 고향 허난(河南) 성 궁이(鞏義) 시 캉뎬(康店) 전을 떠나 베이징에 올라온 건 2009년 4월 집에 발생한 화재 때문이었다. 법원은 리 군의 새엄마를 방화범으로 지목하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리 군의 아버지 리더바오(李德寶·45) 씨는 인정할 수 없었다. 부인의 누명을 풀어야 했다. 현장 보존을 위해 폐허가 된 집을 그대로 둔 채 관할 공안국과 성 정부 공안청 등을 상대로 호소했다. 하지만 바위에 계란치기였다. 리 씨 부자는 그 길로 베이징으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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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씨 부자는 2010년에는 3개월 동안 베이징 근교의 흑(黑)감옥에 갇혀 있었다. 흑감옥은 사설감옥이다. 지방정부의 사주를 받은 민간 교도관들이 상팡하러 온 사람들을 납치해 가둬둔다. 리 씨는 “밥을 잘 주지 않아 몸무게 24kg이던 애가 13kg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캉뎬 전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왕나리(王娜莉) 씨는 “흑감옥에서 리 씨 부자의 90일간 숙박비로 1만4000위안(약 260만 원)을 내놓으라고 해 너무 많다고 했더니 ‘그럼 아예 5만 위안(약 929만 원)을 내라. 완전히 없애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이런 일이 안 생기게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다.
리 씨는 아들의 나이가 많아지자 올해 4월 고향으로 내려가 학교에 입학시켰다. 하지만 이미 생계가 완전히 망가져 버린 상태에서 더이상 고향에 머물 수 없었다. 혼자 상팡을 하러 가면 애를 봐줄 사람도 없었다. 한 달 만에 다시 아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올라왔다. 리 군은 기자에게 “우리 아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나요? 그럼 학교에 다닐 수 있는데”라고 물었다.
난팡도시보에 따르면 베이징 등 대도시를 떠돌고 있는 상팡얼다이는 1000명이 넘는다. 도시 한쪽에서는 관얼다이(官二代·고위 관료 자제)와 푸얼다이(富二代·부자 자제)들이 고급차를 몰고 질주하고, 지도부는 ‘차이나드림(中國夢)’을 역설하는 사이에 상팡얼다이들은 너무 다른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