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3D) 입체음향 회사인 소닉티어오디오(STA)의 박승민 대표(왼쪽)와 전동차 출입문 제어장치 업체 소명의 노경원 대표는 특허금융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려냈고 현재 해외 진출까지 노리고 있다. 특허 금융은 담보나 신용이 아닌 특허의 가치에 투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신생 기업이 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맞닥뜨리는 첫 번째 도산 위기. 보통 흑자를 내기 전까지 지속된다. 연구개발(R&D)에 돈을 쏟아 붓느라 적자가 심해져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고 빠른 시간 내에 기업공개(IPO)를 할 가능성이 희박해 벤처캐피털 투자자들도 외면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기술은 좋은 것 같은데…, 재무제표 좀 보여주세요.”
3차원(3D) 입체음향 전문회사 소닉티어오디오(STA)의 박승민 대표(42)는 2년 전부터 은행과 벤처캐피털의 문을 두드렸지만 매번 같은 대답을 들었다. 적자를 내는 신생 기업에 대출이나 투자를 하겠다는 곳은 없었다.
박 대표는 3년 동안 약 10억 원을 들여 기술을 개발한 뒤 국내외 29개국에 특허를 등록했다. 지난해에는 CGV영등포와 CGV여의도에 제품을 납품했다. 처음으로 이 기술을 적용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대박을 터뜨렸지만 STA는 기술개발에 많은 돈을 쏟아 부은 탓에 당장 운전자금이 부족했다.
발을 동동 구르던 박 대표는 3월 20억 원의 투자를 받아 고비를 넘겼다. 구세주는 국내 유일의 지식재산권(IP) 자산운용회사 아이디어브릿지였다. 갖고 있던 특허 38개를 팔았다. 담보나 신용에 대해 묻지 않았다. 박 대표는 “20억 원을 기반으로 롯데시네마에도 납품했고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등 해외 업체와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특허 팔아 ‘데스 밸리’ 넘었다
창조경제 바람을 타고 등장한 IP 금융이 기술은 있지만 돈에 쪼들리는 중소기업에 ‘가뭄 끝에 단비’가 되고 있다. IP 금융이란 특허나 상표,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을 팔아 투자를 유치하거나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이다. 특히 IP 펀드는 담보나 신용 외에 지식재산권의 사업성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유동성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에 유용하다.
STA가 이용한 방식은 ‘세일 앤드 라이선스 백’이다. IP 운용사에 특허를 팔아 투자를 받은 뒤 분기별로 사용료를 내고 (팔아넘긴) 특허를 사용한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특허를 다시 사올 수도 있다. 만약 기업이 특허를 되살 만한 돈이 없다면 IP 운용사는 특허를 다른 곳에 팔아 수익을 낸다.
○ 매각 위기 넘기고 100억 매출 꿈
전동차용 출입문 제어장치(DCU) 제조회사 소명은 특허금융을 통해 매각 위기를 넘기고 2차 협력사에서 1차 협력사로 성장했다. 1998년 설립된 소명은 현대로템의 2차 협력사였다. 그러나 소명은 1차 협력사와 불공정 계약을 맺은 탓에 개발한 모든 기술이 1차 협력사로 넘어가게 돼 있었다.
▼계약 끝나면 특허 되찾을 수도▼
소명이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소문이 나면서 노 대표는 수차례 매각 제의를 받았고 하마터면 일본 업체에 회사와 기술을 통째로 넘길 뻔했다. 그러다 3월 아이디어브릿지에 특허를 팔아 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생산설비를 가동할 수 있었다. 노 대표는 “펀드 덕에 기업이 회생했다”며 “올해 1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IP 금융 아직 걸음마 단계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IP 금융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최근 중소기업진흥공단과 특허청이 특허 담보대출을 실시하겠다고 밝혔고, 일부 시중은행이 유사한 상품을 내놓긴 했지만 아직 활성화 단계에 이르진 못했다.
구영민 특허청 산업재산진흥과장은 “강력한 원천특허를 육성하고 금융기관들이 전문적인 특허 심사 체계를 마련해 기업의 신용도가 떨어지더라도 IP의 가치만으로도 투자나 대출이 집행되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