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국제부 기자
북한이 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문답 형식으로 북측의 입장을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조평통 대변인은 북핵 불용과 북한 체제 변화를 촉구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발언이 “우리 존엄과 체제를 심히 모욕하는 도발적 망발”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주민들에게까지 알렸는지는 조선중앙방송과 노동신문을 살펴봐야 알 수 있다. 북한이 통신사만 활용했다면 이는 한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북한 체제와 핵을 논의했다는 사실을 내부엔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칫 “최대 우방인 중국까지 한국과 짝짜꿍하는 것을 보니 우리의 앞길이 더 절망적일 것”이라는 민심만 부추길 수 있다. 더구나 집권 2년차인 김정은은 아직 중국에 못 갔는데, 집권 반년차인 박 대통령이 먼저 중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주민에게 알리기엔 자존심이 상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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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TV나 노동신문을 통해 발표하는 것은 그 내용의 절반쯤은 북한 주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달 19일 발표한 인민보안부 특별담화가 대표적이다. 상영되던 영화까지 이례적으로 중단하고 “공화국을 헐뜯는 탈북자들을 물리적으로 없애버릴 조치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해 극적 효과까지 높였다. 이는 “남조선까지 찾아가 없애버릴 정도이니 내부에서 이런 정보를 흘려주는 자들은 가문의 멸족을 각오하라”는 메시지라 볼 수 있다.
북한이 불만을 외부로 향해서만 터뜨렸을 경우엔 향후 상황에 따라 태도 변화가 비교적 유연해질 수 있다. 하지만 주민에게 ‘말빚’을 진 사안은 정부의 공신력과 위신, 나아가 요즘 아주 민감해 마지않는 최고 존엄의 권위가 걸려 있어 쉽게 얼버무리기 힘들다.
한국 언론도 앞으로 북한의 이런 발표를 ‘대외용’과 ‘대내외용’으로 구분해 명확히 이해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