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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꼬리에 꼬리 문 차… 31개 車路 몰려 아수라장

입력 | 2013-06-18 03:00:00

[시동 꺼! 반칙운전/‘분통 터지는 도로’ 르포]① 서울 신촌오거리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신촌 오거리에서 연세대 방향으로 꼬리를 문 차량들이 홍익대 방향 직진 차량을 막고 있다. 파란 불이 들어온 뒤에도 꼬리물기 차량 대열에 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차량들이 아예 직진을 포기하고 정지선에 서 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유독 운전자를 분통 터지게 만드는 도로들이 있습니다. 파란불이 들어왔는데 앞으로 한 발짝밖에 가질 못한 채 다음 빨간불을 맞이해야 하는 교차로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꼬리물기 때문이죠. 나들목이나 갈림길에 길게 줄을 서 있노라면 더더욱 짜증이 납니다. 얌체같이 달려와 머리부터 들이밀어 앞에 끼어드는 차 때문입니다. 양처럼 순한 표정으로 시동을 켠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 고질적 반칙운전의 현장을 ‘시동 꺼! 반칙운전’ 취재팀이 차례차례 르포합니다. 》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옆 신촌 오거리. 지하철 이대역 대흥역 광흥창역 홍대입구역으로 이어지는 도로 4개와 연세대로 향하는 도로 1개가 만난다. 몰려있는 차로가 31개.

이곳은 운전자가 짜증을 내지 않기가 쉽지 않은 도로다. 단지 차량이 많아서가 아니다. 파란불로 바뀌어도 출발할 수 없는 탓이다. 취재팀은 3, 12일 각각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이곳을 관찰했다.

이대역 방향에서 달려온 차들이 교차로 정지선에 섰다. 홍대입구역 방향 직진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었다. 그 앞에 다른 차량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가로질렀다. 왼쪽 대흥역에서 오른쪽 연세대 방향으로 가는 차들이었다. 왕복 6차로인 대흥역 쪽에서 왕복 4차로인 연세대 쪽으로 가다 보니 교차로 내에서 병목현상이 빚어졌다. 정체가 점점 심해져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교차로를 통과하지 못한 차량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이화여대 방향에서 온 차들은 파란불을 보자마자 앞으로 가기 위해 꼬리물기 차량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차량 행렬은 알파벳 ‘T’자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결국 직진 차량은 꼬리물기 차량에 앞이 막혀 2, 3m도 가지 못했다.

한 운전자가 ‘빵빵!’ 경적을 울려댔다. 운전석 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 꼬리물기 차량을 째려봤다. 차들이 연쇄적으로 ‘빵! 빵!’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직진에 실패한 한 운전자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신호 꼬박꼬박 지키는 사람은 오도 가도 못하고, 빨간불에도 계속 꼬리물고 들어오는 저 얌체 같은 사람들은 제 갈 길 잘 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화를 냈다. 운 좋게 교차로를 건넌 다른 운전자는 “신호가 두 번 바뀌는 동안 꼬박 서 있다가 세 번째 만에 건너왔다”며 “앞에 차가 세 대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좌회전 차로에 있던 승용차들이 고개를 들이밀며 끼어드는 바람에 신호를 놓쳤다”고 투덜거렸다. 그는 “바로 옆에 경찰서 지구대가 보이는데 왜 이런 얌체 운전자를 안 잡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 오토바이가 꼬리를 문 차량 사이를 뚫고 나갈 심산으로 파고들었는데 이를 보지 못한 승용차가 오토바이 앞으로 지나갔다. 놀란 오토바이가 그 자리에 섰다.

신촌 오거리에서 매일 벌어지는 이 같은 고질적 반칙운전은 이 교차로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신촌 오거리는 광흥창역 교차로, 동교동 삼거리, 연세대 교차로, 아현 교차로 등과 거미줄처럼 연결된다. 이들 교차로는 하나같이 차량이 몰리는 곳이어서 결국 신촌 오거리가 거미줄의 중심처럼 차량 흐름이 집중되는 것이다.

오후 6시 반. 꼬리물기가 최고조에 이르자 이를 중간에서 끊기 위해 교통경찰이 나타났다. 그는 “교차로 주변에 다른 교차로가 연결돼 있으면 정체가 더 심해진다”며 “신촌 오거리는 주변 교차로에서 시작된 교통체증이 쌓이다 최고조에 이르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처럼 차가 마구 몰리면 단속보다는 최대한 빨리 소통시키는 게 우선”이라며 “위반차량을 찍는다고 캠코더를 들고 서있다간 교차로가 마비될 것”이라고 난감해했다.

초보운전이라는 한 50대 여성 운전자는 “이곳을 처음 지나는데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어도 앞으로 가질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앞차가 꼬리물기 행렬의 맨 뒤를 왼쪽으로 크게 돌아서 가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핸들을 돌려 그대로 따라갔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장택영 수석연구원은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연세대 방향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꾸든가 폐쇄하고 우회로를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오거리를 사거리로 만들면 혼잡이 줄어들고 꼬리물기도 막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연세대 앞 도로는 그 일대가 목적지인 차량보다는 통과하는 차량이 대부분이라 이런 개편으로 꼬리물기를 막을 수 있다는 것. 장 수석연구원은 “신촌 오거리는 통행량이 많아 쉽지 않겠지만 통행량이 많지 않은데도 꼬리물기가 빚어지는 교차로의 경우에는 선진국처럼 회전식 교차로를 만드는 것도 문제 해결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 운전자 여러분을 분통 터지게 만드는 도로를 제보해 주십시오. △얌체 같은 끼어들기 △나만 생각하는 불법 주정차 △꼬리물기 등이 만성적으로 이뤄지는 현장을 알려주십시오. e메일은 traffic@donga.com으로, 전화 제보는 02-2020-0000번으로 해주세요.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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