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경제부 기자
이날 이 전 부총리가 보여준 모습은 전형적인 ‘모피아’(옛 재무부 영문 약칭인 ‘MOF’와 이탈리아 범죄조직인 마피아를 합친 조어)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라는 자부심, 강한 정서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끈끈함은 비단 이 전 부총리뿐 아니라 핵심 모피아들의 공통분모다.
최근 재무 관료 출신인 임영록 KB금융 사장과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 등이 민간 금융사의 수장으로 선임되면서 모피아가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정권 출범 초기에는 옛 경제기획원 라인이 뜨고 모피아가 몰락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판세가 완전히 뒤집어졌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역시 모피아”라는 감탄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혹시라도 이번 금융권 인사를 계기로 제2의 모피아 전성시대를 열어 보자는 움직임이 싹터서는 안 된다. 많은 국민이 모피아의 금융계 노른자위 독식에 문제가 많다고 보면서도 퇴진 요구로까지 강도를 높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뭔가 중요한 숙제를 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같은 ‘작은 감자’가 그 숙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이 문제는 사는 쪽과 파는 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성사되고 그렇지 않으면 무산되는 시장의 문제이지 의지로 풀어내는 숙제가 아니다.
금융지주 계열사 사장에 부행장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지 못하도록 인사 관행을 개혁하거나, 중소기업 대출 때 절차만 잘 지켰다면 사후 부실에 책임을 묻지 않도록 금융 관행을 혁신하는 등의 과제는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다. 저항세력도 많아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모피아가 아니면 풀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국의 금융사에서 모피아는 공적도 많지만, 산업화가 이룩된 이후에는 기본적으로 금융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마지막 남은 숙제를 잘해서, 금융 산업의 더 큰 해악을 해결하는 데 필요했던 작은 해악이었다는 정도의 평가라도 얻는 것이 모피아에 남은 명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