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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파… 초상화파… 사진파… 시대따라 진화한 음악가 스타일

입력 | 2013-06-06 03:00:00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




“어떤 작곡가를 좋아하세요?” 흔히 듣는 질문입니다. 글쎄요. 좋은 작곡가가 너무 많은데 어떻게 대답할까요.

제가 어떤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이렇습니다. “저는 사진이 남아있는 작곡가가 좋습니다. 그렇지만 넥타이 맨 사람은 별로죠.” “그러시군요. 저는 가발 쓴 작곡가가 좋은데….”

초상 사진은 1850년경 유럽의 사회적 관습이 되었습니다. 후기 낭만파 또는 민족주의 작곡가부터 사진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흔한 ‘포 인 핸드’형 넥타이는 1890년경 유행이 시작됐습니다. 보로딘 정도를 빼면 이런 넥타이를 맨 작곡가는 거의 ‘현대 음악가’입니다.

모차르트나 바흐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가발은 17세기 프랑스 궁정에서 시작돼 18세기 전 유럽 귀족사회에 퍼져나갔다가 18세기 말 쇠락을 맞았습니다. 베토벤 이후 가발을 쓴 작곡가는 보지 못한 듯합니다.

그렇다면, 작곡가의 사진만 보고 스타일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할까요? 고전파나 낭만파 대신 가발파, 초상화 비(非)가발파, 넥타이파, 사진형 비(非)넥타이파….

얼마든지 예외가 있지만 이런 설명도 가능할 듯합니다. 가발파는 귀족사회와 교회를 위해 음악을 만들었고 그 결과 명쾌함과 형식미를 강조했습니다. ‘초상화 비가발파’는 귀족의 저택을 뛰쳐나와 돈 많은 자영업자들을 극장에 불러놓고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처음 이들의 음악은 귀족에 반항하는 시민계급 의식에 영향을 받아 격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시민혁명이 좌절되자 이들은 사소한 일상과 로맨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습니다.

‘사진형 비넥타이파’는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살았습니다. 큰 공장들을 세워 거부가 된 시민계층은 다시금 스스로 위대해지고자 했습니다. 이 시기에 음악가도 스케일이 컸습니다. 민족의 흥망과 신들의 투쟁이 이들이 즐겨 다룬 주제였습니다. 넥타이파는 대부분 이전까지의 음악 전통을 거부하고 각자 자신만의 음악문법을 사용한 사람들입니다.

<음원 제공 낙소스>

이제 우리가 아는 작곡가의 이름을 대입해 볼까요? 가발파=비발디 하이든 모차르트. 초상화 비가발파=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 사진형 비넥타이파=바그너(초상화도 있음) 생상스 차이콥스키…. 생각나는 이름만 대략 꼽았습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과장됐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거친 분류입니다. 그렇지만 이 점은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음악가 또한 ‘고독한 단독자’가 아니라 ‘시대의 아이’라는 것. 예술작품은 어쩔 수 없이 시대의 산물이란 점 말입니다. blog.daum.net/classicgam/15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