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조금 줄어 번호이동도 급감… 판매점 폐업 잇달아
○ 급증한 판매점이 골칫거리
이동통신 유통매장은 대리점과 판매점으로 나뉜다. 대리점은 주로 특정 통신회사와 계약을 하고 한 통신사 상품만 다룬다. 반면 판매점은 각 통신사 대리점과 계약을 하고 여러 통신사의 가입자를 동시에 모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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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급감으로 문제가 생긴 곳은 판매점이다. 대리점은 통신사의 고객관리 업무를 대신하거나 가입자를 유치해 얻는 수수료를 주요 수익원으로 하지만 판매점은 보조금에 딸려 나오는 판매이익금 외엔 수익원이 없기 때문이다.
1억∼2억 원을 투자한 자영업자들이 주로 운영하는 판매점은 지난해만 해도 연간 6조 원에 이르는 보조금으로 돈을 벌었지만 올해 초 보조금이 줄어들자 폐업하는 판매점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는 불황을 타개하려고 불법 마케팅에 나서 소비자의 피해가 우려된다.
○ 통신 유통시장 구조조정 본격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30m² 규모의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33)는 4년 전 1억 원을 투자해 창업했지만 얼마 전 가게를 내놨다. 권리금도 포기했다. 그는 지난해까지는 한 달에 40건 이상 신규 가입이나 번호이동 손님이 있었지만 올해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했다. 이익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출고가 100만 원짜리 휴대전화를 팔면 이통사(30만∼60만 원)와 휴대전화 제조사(10만∼30만 원)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 이 중 일부를 고객에게 줘도 30만 원 이상을 수익으로 챙겼다. 그런데 판매점이 줄 수 있는 보조금이 27만 원 이내로 제한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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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의 정보공유 사이트 ‘모비고’(www.mobigo.co.kr)에는 김 씨처럼 휴대전화 판매사업을 포기하는 내용의 글이 일주일에 100건 이상 올라온다. 과거엔 창업과 폐업 수가 엇비슷했지만 올해는 폐업이 대부분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41)는 “지난해 말 포화상태에 이른 스마트폰 시장이 올해 초 이통 3사의 영업정지 여파로 얼어붙었다”면서 “보조금 제한으로 휴대전화 가격이 오르자 소비자들도 선뜻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 ‘호갱님’ 만드는 일부 판매점
판매점들이 악화된 실적을 만회하려고 각종 꼼수로 고객을 속이는 일도 적지 않다. 최근 ‘호갱님(호구+고객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이 혼탁해진 근본 원인은 판매점의 실적 악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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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할부기간을 늘려 할부원금을 낮추는 눈속임을 하거나 위약금 또는 잔여 할부금을 대납해 준다며 고객을 꾀는 판매점이 최근 부쩍 늘었다. 그동안 이통사들은 “판매점의 탈법적 영업행태는 대리점의 책임”이라며 책임을 피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판매점의 일탈행위에 대한 책임을 이통사에도 물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해진 의원(새누리당)은 이통사들의 차별적 보조금 지급 금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률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책임 소재가 모호했던 판매점은 앞으로 이통사의 승인을 받아야 개업할 수 있게 된다. 판매점의 행위도 이통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 판매점의 경영 악화에 따라 시장의 혼탁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