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경목 교수 논문 발표
1703년 노비 해방 대행업자로 추정되는 김정삼이 노비 윤월의 남편 또는 아들로 추정되는 김선백에게 써준 확인 문서. 윤월이 스스로 돈을 마련해 양인이 되는 과정에서 김정삼이 새 주인인 것처럼 이름을 빌려줬고, 당시 증명서는 또다른 노비 최선위에게 줬기 때문에 훗날 자손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증거로 제시하라고 쓰여 있다. 전경목 교수 제공
1703년 김정삼이라는 사람이 윤월의 남편 또는 아들로 추정되는 김선백에게 써준 문서의 일부다. 2년 전인 1701년 김정삼은 윤월의 속량 과정에서 자신이 윤월을 사는 것처럼 이름을 빌려주고 문서를 작성했다. 돈은 윤월이 마련했고 나중에 김정삼은 윤월이를 양인(良人)으로 풀어주었다. 김정삼은 노비의 해방을 알선해주는 일종의 브로커였던 셈이다.
조선 후기 노비가 주인이나 국가에 돈이나 곡식을 내고 양인이 되는 속량이 빈번해지면서 이 과정에서 노비 해방을 알선해주는 대행업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당시 속량은 법전 ‘속대전’에 관련 규정이 명시돼 있을 정도로 제도화된 신분 해방의 방법이었고 그 절차도 수월해지고 있었다.
이미 속량이 제도화된 상황에서 대행업자가 나타난 이유가 뭘까. 조선 후기에 대부분의 양반은 여전히 천인을 양인으로 풀어주는 것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 조상에게도 죄를 짓는다고 여겨 속량을 꺼렸다. 게다가 양반이 노비를 속량해줄 때 일반 매매가보다 서너 배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노비로서는 나름의 생존전략이 필요했다. 전 교수는 “노비들이 ‘바가지’ 가격을 피하기 위해 전 주인 몰래 가짜 주인을 내세워 일반 매매가로 거래한 뒤 대행업자로부터 확인서를 받아 평민으로 풀려났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행이 알려지자 체면상 속량을 꺼리던 양반들도 돈을 목적으로 암암리에 대행업자를 이용했다. 주인과 노비가 브로커를 끼고 ‘짜고 치는 고스톱’을 친 셈이다.
또 전 교수는 “노비 입장에선 속량할 때 주인의 얼굴을 마주 보며 매매문서를 작성하기 껄끄러웠을 테고, 속량 절차를 밟기 위해 사나운 아전이 있는 관아에 나가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을 것”이라며 “이런 여러 필요에 따라 ‘가짜 주인’이 등장했고, 그 가짜 주인이 속량 대행업자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1733년 김아무개가 사내종 준석에게 써준 문서도 흥미롭다. ‘산소의 석물(石物)을 마련해야 하나 (돈을 마련할) 다른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다. 지금 들으니 네가 속량하길 자원한다고 하더구나. 은자(銀子) 50냥을 받고 영원히 속신(贖身)함을 허락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